수전패(受田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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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초기에 군전이나 과전을 받고 서울에서 시위(侍衛) 근무를 담당하던 군인.

내용

수전패에 대해서는 고려말 토지개혁 때 6도의 한량관리(閑良官吏)로서 서울에서 시위 근무를 하는 자에게 5~10결의 군전(軍田)을 지급하게 한 규정이 있었으므로 이때 토지를 받은 자를 수전패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또 조선 건국 후 3품 이하의 한량으로서 과전(科田)을 받은 자로 보는 견해가 있다. 수전패는 토지를 받는 대신 서울에 상경하여 삼군부(三軍府)에서 시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수전패에 지급한 토지는 새 왕조 건국 후 민심 수습 차원에서 지급한 것으로 제도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1회 지급으로 끝났다. 이 때문에 수전패와 무수전패의 구분이 생겨났다고 한다.

용례

兵曹參判趙從生啓 臣昨日點閱受田牌軍器 有京畿陽城住 檢參議年八十二歲者 亦與焉 恐失老者安之之義 願勿令點考 上嘉納曰 有科田 欲以忠信待士也 老者雖不與點考 而食其田 何害於義 遂傳旨兵曹曰 自今受田牌內 年七十以上者 其除春秋軍器點考 以示優老之義(『세종실록』 11년 9월 18일)

참고문헌

  • 劉承源, 「朝鮮 太宗代 前銜官의 軍役」, 『韓國史硏究』115집, 2001.
  • 李成茂, 『朝鮮初期 兩班硏究』, 一潮閣, 1980.
  • 韓永愚, 『朝鮮前期 社會經濟硏究』, 乙酉文化社,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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