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禪雲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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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88개 자복사 가운데 하나로,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선운산에 있는 절.

개설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위덕왕 때인 577년에 검단이 창건한 대가람이다. 고려말에 효정이 중수하였다. 조선 태종 때 천태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고, 성종 때 크게 중창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때 중창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창, 중수되었고 현재는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의 24교구 본사로 50여 개의 말사가 있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선운사사적기(禪雲寺寺蹟記)』에 따르면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는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 수도를 위한 24개소의 굴이 있는 대가람이었다고 한다. 선운사 창건에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온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龍)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 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이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이 자리에 선운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통일신라기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고려말인 1354년(고려 공민왕 3) 효정(孝正)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2) 조선전기

1407년(태종 7) 12월, 장사(長沙: 현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가 천태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는데, 장사 선운사는 천태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자복사찰은 나라의 안녕과 왕실의 복을 빌기 위해 지정하거나 건립하는 사찰이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고찰 선운사가 조선초에도 지방의 명찰(名刹)이었음을 알 수 있다.

1472년(성종 3)부터 10여 년 간 행호극유(幸浩克乳)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다. 1474년 장육전, 관음전을 세우고 1476년 천불대광명전을 조성했다. 1481년(성종 12) 지장전, 동상실, 금당, 능인전 등을 지었다. 극유의 중창으로 건물이 189채나 되는 웅장한 규모의 절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3) 조선후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어실(御室)을 제외한 절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탔다.

1613년(광해군 5) 무장현감송석조(宋碩祚)의 권유로 일관(一寬), 원준(元俊)이 중창 불사를 벌여 1619년까지 보전(寶殿), 상하 누각, 동서 양실(兩室), 법당, 천불전, 지장전, 능인전 등을 건립하여 사찰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에도 일관, 원준의 뜻을 이어 불사가 계속되어 1620년에 정문, 향운각, 천왕문, 1658년 시왕전, 1659년 해납료, 삼선료, 1676년 약사전, 1677년 나한전, 1678년 극락전, 1682년 칠성료, 청심료, 1691년 대승전 등을 건립하였다. 이 무렵 절에서 수행하던 대중은 무려 26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18세기에 들어와 관음전, 양계료, 양봉료, 팔상전, 한산전, 장육전 등을 건립하였다. 1839년(헌종 5) 찬성 등이 법당과 향운전을 중수했다. 이때 산내 암자가 5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후기 화엄학을 열었던 설파상언(雪坡尙彦), 선문(禪門)의 중흥주로 추앙받는 백파긍선(白坡亘璇), 환응탄영(幻應坦泳), 근대 불교의 선구자 박한영(朴漢永) 등이 선운사에서 수행하였다.

(4) 현대

현재 대웅보전을 비롯해 영산전, 관음전, 명부전, 만세루, 팔상전, 산신각, 천왕문 등 10여 동 건물과 참당암, 도솔암, 동운암, 석상암 등 4개의 암자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24교구 본사로 5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선운사를 소재로 한 현대시로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洞口)」,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김용택의 「선운사 동백꽃」 등이 유명하다.

문화재

선운사 대웅전(禪雲寺 大雄殿, 보물 제290호)은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현재의 건물은 1472년(성종 3)에 중건하여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에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긴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禪雲寺 金銅地藏菩薩坐像, 보물 제279호)은 조선초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높이는 1m이다. 조선시대 지장신앙의 양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운사 지장보살좌상(禪雲寺 地藏菩薩坐像, 보물 제280호)은 고려후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높이는 96.9㎝이다. 고려후기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우아하고 세련된 걸작이라 평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선운사 주변에는 진흥굴, 용문굴, 만월,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84호)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선운사사적기(禪雲寺寺蹟記)』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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