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곤체(西崐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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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송 초기에 유행한 한시의 시체(詩體).

개설

서곤체(西崐體)라고 할 때 ‘서곤’이란 본디 중국 서방의 곤륜(崑崙)과 군옥(郡玉)의 산을 가리키는데, 고대의 제왕이 장서를 보관했던 곳이라고 한다.

중국 북송(北宋) 초기에 양억(楊億)·유균(劉筠)·전유연(錢惟演) 등은 당나라 말기 시인 온정균(溫庭筠)과 이상은(李商隱)의 시풍을 본받아 화려한 수사와 대구(對句)·전고(典故)를 중시하였다. 양억과 전유연 등 17명이 비각(秘閣)에서 화답한 시 250여 수를 엮어 만든 책을 『서곤수창집(西崑酬唱集)』이라고 하는데, 북송 초기의 서곤체를 대표하는 시집이다. 그 이후로 『서곤수창집』에 실려 있는 작품 및 그것과 유사한 풍격의 시를 일컬어 서곤체라 이름 했으며, 이러한 경향의 시를 창작하는 데 참여한 시인들을 ‘서곤 작가’라고 칭하였다.

내용 및 특징

『서곤수창집』에 수록된 시가는 대부분 송나라 초기의 태평성대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서곤체 시인들은 박학다식한 것을 중시하고 글의 화려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런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구와 전고는 현실을 완곡하게나마 반영하려 했던 그들의 의도와 표출하려 한 정감을 감추어 버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 때문에 서곤체는 시의 사상과 내용이 빈약하고, 당대의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시대의 문인들도 서곤체를 상당히 즐겨 썼다. 여러 문인들이 「효서곤체(效西崑體)」·「효곤체」·「곤체」 등의 제목으로 지은 작품들이 현재 상당수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서곤체의 특징인 전고의 사용이나 화려한 표현을 그대로 수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전고가 남용되고 표현만 화려해지는 등의 폐단이 있었다. 연산군 때 이미 문인들이 서곤체를 숭상하여 문사가 어렵고 괴벽해졌다는 비판이 일었는데(『연산군일기』 6년 11월 30일), 이런 비판은 영조 때까지도 계속되었다(『영조실록』 49년 9월 25일). 송나라 초기에 서곤체가 유행했다는 사실은 『세종실록』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세종실록』 12년 8월 22일).

참고문헌

  • 박민정, 「西崑體의 詩史的 位相에 대한 재고찰」, 『중국어문논총』35집, 중국어문연구회, 2007.
  • 박민정, 「西崑體와 李商隱의 無題詩에 관한 小考」, 『중국어문논총』42집, 중국어문연구회, 2009.
  • 박병익, 「朝鮮朝의 西崑體 수용과 창작 양상」, 『한국한문학연구』44집, 한국한문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