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왕도(十王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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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죽은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그린 그림.

개설

시왕도[十王圖]는 사람이 죽은 후 살아생전의 죄를 10명의 왕에게 재판을 받고 천·아수라·인간·축생·아귀·지옥 등의 육도(六道)로 윤회한다는 불교의 명부신앙(冥府信仰)을 바탕으로 제작된 불화이다.

사람은 죽으면 49일 동안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다가 자리를 잡는다는 불교의 사후 세계관에 중국의 삼년상(三年喪) 관념이 결합하여 사후 7번의 7일과 100일, 1년 되는 소상(小喪)과 3년 되는 대상(大喪)까지 10번의 심판을 받게 된다.

시왕의 개념은 중국 도교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성립된 것으로 시왕도는 사찰의 명부전(冥府殿), 지장전(地藏殿), 시왕전(十王殿)에 주로 봉안되었다. 지장보살(地藏菩薩)과 함께 불교 명부신앙의 핵심적 도상이다.

연원

원래 불교에서 저승은 모두 지장보살이 관할하였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옥황상제의 손자로 인간의 생명과 상벌을 주관하는 도교의 동악대제(東嶽大帝) 개념이 결합되어 지옥에서 죽은 사람들의 업을 평가하여 육도윤회(六道輪廻)를 주관하는 10명의 심판관인 시왕이 불교로 수용되었다.

10세기경에 중국 당나라의 승려 장천(藏天)이 저술한 경전인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에 의하면 죽은 사람은 초칠일(初七日) 즉 7일째에 진광왕, 이칠일(二七日) 즉 14일째에 초강왕, 삼칠일(三七日) 즉 21일째에 송제왕, 사칠일(四七日) 즉 28일째에 오관왕, 오칠일(五七日) 즉 35일째에 염라왕, 육칠일(六七日) 즉 42일째에 변성왕, 칠칠일(七七日) 즉 49일째에 태산왕, 100일째에 평등왕, 1년째에 도시왕, 3년째에 오도전륜왕의 순서에 따라 10명의 왕 앞을 지나면서 재판을 받는다. 이 시기부터 시왕신앙이 성행하면서 시왕의 도상이 성립되었으며 시왕경변상도[十王經變相圖]가 제작되었다.

남송(南宋)의 불교 문헌인 『석문정통(釋門正統)』에 의하면, 시왕도는 당나라 때 장과(張果)가 처음 그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남송에서 원나라 초기에는 경원부(慶元府)를 중심으로 시왕도를 제작하여 수출하기도 하였는데 현재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 박물관에 시왕도 300여 축이 남아있다. 이 시왕도들은 경원부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상단에 시왕이 판관과 사자를 거느리고 망자를 심판하고 있으며 하단에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어 우리나라 시왕도 도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초기에 명부신앙이 들어왔으며 중국에서 시왕신앙이 성행했던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시왕사[十王寺]라는 절이 창건될 정도로 유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그 하단부에 시왕·제석천·범천·사천왕 등이 있는 지장시왕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명부전 안에 지장보살과 시왕이 함께 봉안되면서 시왕도 조성이 본격화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볼 수 없었던 1폭에 1명의 시왕을 그린 단독의 시왕도가 제작되었다.

내용

시왕도에는 각 왕이 주재하는 지옥과 그곳에서 죄인들이 벌을 받는 장면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왕도의 소의경전인 『예수시왕생칠경』에는 각 왕의 주재 지옥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한 달 중 정해진 10번의 날에 불보살의 명호(名號)를 부르면 특정 지옥에 빠지지 않고 죄를 면한다는 십재일(十齋日) 신앙이 수용되면서 각 왕이 주재하는 지옥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시왕도는 지옥 장면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게 묘사되었다.

(1) 제1 진광대왕도(秦廣大王圖)

죽은 자의 첫 7일에 죄과를 재판하여 사람들이 악을 끊고 선을 닦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대체로 4명의 판관들과 귀왕(鬼王), 혹은 주(周)장군, 당(唐)장군, 선(善)동자, 악(惡)동자, 그리고 일직사자와 월직사자를 권속으로 한다. 하단에는 망자를 목판 위에 눕히고 산 채로 몸에 못을 박는 철정지옥(鐵釘地獄)을 그렸다.

(2) 제2 초강대왕도(初江大王圖)

두 번째 칠일에 망자들이 삼도천(三途川)을 건너오는 초강 가에 관청을 세우고 이를 감시한다. 나무판에 죄인을 묶어놓고 배 속에서 오장육부를 꺼내는 고통을 주는 추장지옥(抽腸地獄)을 함께 그렸다.

(3) 제3 송제대왕도(宋帝大王圖)

대지옥에 살며 별도의 16지옥을 두고 세 번째 칠일에 죄의 경중에 따라 죄인을 각 지옥으로 보내는데 특히 부부가 다른 사람과 음행하는 사음(邪淫)을 다스렸다. 죄인을 판에 묶고 혀를 빼내 그 위에 소가 쟁기질을 하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을 묘사하였다.

(4) 제4 오관대왕도(五官大王圖)

네 번째 칠일 날 오관대왕은 업의 저울을 가지고 진실되지 못하고 허황된 말인 망어(妄語)를 다스리는데 수(水), 철(鐵), 화(火), 작(作), 토(土) 오관이 각각 살인, 도둑질, 잘못된 행동, 거짓말, 음주를 맡아서 죄를 다스린다. 옥졸이 죄인을 가마솥의 끓는 기름 속에 집어넣는 확탕지옥(鑊湯地獄)을 함께 묘사하였는데 이곳은 계(戒)를 파하고 살생하여 고기를 먹은 사람이나 중생을 태워 죽인 사람들이 벌을 받는 곳이다.

(5) 제5 염라대왕도(閻羅大王圖)

염라대왕은 원래 인도에서는 죽은 자의 교주였으나 지옥의 왕이 되어 다섯 번째 칠일 날 업경(業鏡)으로 죄인이 살아있었을 때의 행위를 비춰보아 그에 따라 벌을 준다. 하단에는 맷돌과 방아로 산 채로 몸이 짓이겨지는 고통을 당하는 대애지옥(碓磑地獄)을 그렸다.

(6) 제6 변성대왕도(變成大王圖)

여섯 번째 칠일 날 오관대왕과 염라대왕에게 재판을 받고도 죄가 남은 사람이 있으면 지옥에 보내 벌을 받게 한다. 온몸이 칼에 찔리는 고통을 당하는 도산지옥(刀山地獄)을 그렸는데 도산지옥은 주로 칼이나 몽둥이로 남을 괴롭힌 사람이 떨어지는 곳이다.

(7) 제7 태산대왕도(泰山大王圖)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던 도교의 태산부군으로 죽은 지 49일 되는 자의 선악을 기록하여 업과에 따라 다시 살아갈 곳과 지옥에 보내는 일을 정한다. 이로써 불교에서는 49일 되는 날 윤회하여 살아갈 곳을 찾게 된다고 믿었다. 산 채로 몸이 잘리는 고통을 당하는 거해지옥(鋸解地獄)을 함께 그렸다.

(8) 제8 평등대왕도(平等大王圖)

죽은 지 100일 되는 날에 팔한(八寒), 팔열(八熱) 지옥의 사자와 옥졸을 거느리고 공평하게 죄와 복을 정한다. 두 개의 산에 짓눌리는 고통을 당하는 협산지옥(夾山地獄)을 묘사하였는데 살생, 도둑질 등의 죄를 범한 사람이 떨어지는 곳이다.

(9) 제9 도시대왕도(都市大王圖)

죽은 자가 좋은 곳에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친족들에게 공덕을 쌓을 것을 권장한다. 『법화경(法華經)』이나 아미타불 조성 등, 공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얼음산에서 추위에 떠는 고통을 당하는 한빙지옥(寒氷地獄)을 묘사하였는데 자비로운 마음이 없거나 겁탈하고 도둑질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10) 제10 오도전륜왕도(五道轉輪王圖)

죽은 지 3년이 되는 날에 여러 왕을 거치면서 죄를 심판받은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다스려 다시 태어날 곳을 결정한다. 오도전륜대왕은 관복에 원유관을 쓴 다른 대왕과 다르게 갑옷에 무사 옷을 입은 형상이다. 화염에 싸인 지옥문 앞에 형벌을 마친 죄인들이 모여 천, 인,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6도로 윤회하기 위한 길을 떠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특징

조선시대 시왕도는 도상이 형성되던 초기부터 상단에는 시왕의 심판 광경, 하단에는 지옥 장면을 묘사하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와 같은 시왕도의 형태는 당나라 화가 염립본(閻立本)이 그린 「역대제왕상(歷代帝王償)」 같은 일반 회화의 구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시왕이 쓰고 있는 관은 왕이 쓰는 원유관(遠遊冠)이며 복장이나 홀을 들고 있는 모습 등이 제왕의 이미지에서 형상화된 것이다. 이런 시왕도의 도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인 구성 방식은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따라서 현재 남아있는 시왕도는 10명의 왕을 몇 폭으로 나누어 그렸는가에 따라 10폭 형식, 6폭 형식, 4폭 형식, 2폭 형식 등 총 4가지 형식으로 분류한다. 가장 대표적인 10폭 형식은 1폭에 1왕을 그린 것으로 1743년(영조 19)에 제작된 부산 범어사(梵魚寺) 시왕도와 1775년(영조 51)에 제작된 양산통도사(通度寺) 시왕도 등이 대표작이다.

6폭 형식은 10명의 왕에 사자, 판관 등을 더한 12구를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것으로 1880년(고종 17)작인 울진 불영사(佛影寺) 명부전 시왕도가 있다. 4폭 형식은 10명의 왕을 2왕 2폭과 3왕 2폭으로 나누어 그린 것으로 19세기 후반에 유행하였다. 2폭 형식은 10명의 왕을 5명씩 그린 것으로 한 폭은 홀수인 제1·3·5·7·9왕, 다른 한 폭은 짝수인 제2·4·6·8·10왕을 그렸는데, 1862년(철종 13)의 구례화엄사(華嚴寺) 명부전 시왕도에서 볼 수 있다.

전각에 모실 때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홀수 서열의 대왕은 왼쪽에, 짝수 서열의 대왕은 오른쪽에 모신다.

참고문헌

  • 김정희, 『조선시대 지장시왕도 연구』, 일지사, 1996.
  • 김정희, 『불화 : 찬란한 불교 미술의 세계』, 돌베개, 2009.
  • 정병삼, 『그림으로 보는 불교이야기』, 풀빛, 2000.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