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기지도(三國基址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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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년(영조 33) 홍양한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옛 강역을 표시하여 제작한 역사지도.

개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영류왕’ 조를 보면, 628년(고구려 영류왕 11)에 견당사(遣唐使)를 통하여 당나라에 고구려의 지도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평양 부근에서 발굴된 4세기경의 고구려 벽화 속의 지도로 미루어 당시 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지도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기이」 ‘남부여 전백제 북부여’ 조에 수록된 ‘도적(圖籍)’이라는 표현과 ‘백제지리지(百濟地理志)’라는 기록이 있어 지도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신라에도 지리지와 지도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조의 671년(신라 문무왕 11)에 신라와 백제 간의 경계를 지도에 의하여 살펴보았다는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1396년(태조 5)에 편찬된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이첨(李詹)의 「삼국도후서(三國圖後序)」에서 이첨은 1396년 삼국사를 3책으로 편집하고 우리나라의 지형을 조사하여 정리한 것을 셋으로 나누어 각각 책 위에 붙여 모든 군현의 이름을 기재하고 그 아래 당시 지명을 주로 붙였다. 따라서 조선초기에도 삼국 지도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기지도(三國基址圖)는 영조가 홍양한(洪良漢)에게 명하여 제작한 지도로 알려져 있는데, 현존하는 것은 없다. 다만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조선강역총도(朝鮮疆域摠圖)」 중 제1 두루마리의 역사지도가 삼국의 옛 강역(疆域)을 표시하고 있는 것은 삼국기지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및 특징

영조는 홍양한에게 삼국기지도를 제작하게 하였는데, 각기 방위색(方位色)으로 그 경계를 표시하였다. 영조는 그 지도를 보고 삼국의 지형이 손바닥 들여다보는 것처럼 분명하다고 하였는데(『영조실록』 33년 8월 6일), 상당히 자세한 지형을 표시하고 있었던 듯하다.

홍양한의 삼국기지도는 현재 전하지 않으므로, 당대에 제작된 다른 지도를 통해 그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조선강역총도」는 조선 영조대에 채색 필사로 제작된 역사지도이다. 3개의 두루마리 형식이며, 제1 두루마리에는 신라입국강역총도, 진한·마한·변한 삼한분계지도, 신라·고구려·백제 발생지역도, 백제강역지도, 고구려 강역지도, 고려시대 각 도의 지도 등으로 제작되었다.

「조선강역총도」의 제1 두루마리의 제작 내용이나 제작 시기 등이 삼국기지도와 유사하여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 지도는 삼국시대 지명과 조선시대 지명을 병기하였기 때문에 역사지도로서 가치가 높다. 제2 두루마리에는 황해도, 평안도, 평양전도, 강원도, 함경도, 일본국도 등이 그려져 있다. 제3 두루마리에는 팔도전도, 도성도, 도성삼강도, 경기도, 강화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경상도 등이 그려져 있고 지명 옆에는 그 지역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일일이 기록되어 있다. 울릉도는 제1 두루마리에 우산도(羽山圖)라고 표기했으나, 제3 두루마리에서는 무릉도(武陵圖) 또는 우산도(于山圖)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성도는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이 개략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도성도 중에서 상당히 오래 전에 제작된 도성도이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동문선(東文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