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군(守城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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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의 요충지 등에 설치한 영진(營鎭)의 성(城) 따위를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던 병종(兵種).

내용

고려말 이래 지방 군사력의 일부를 이루어왔으나 독자적인 명칭을 갖는 병종으로 정착한 것은 1397년(태조 6) 주요 거점 지역에 진(鎭)을 설치해서 진군(鎭軍)을 정식으로 성립하면서였다. 같은 시기에 성립된 영진군(營鎭軍)이 마병(馬兵)으로 구성되어 되었던 것에 반하여 대체로 보병(步兵)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로 인해 지방의 육군 중에서 가장 질이 떨어지는 병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번상 근무자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구실을 하는 봉족(奉足)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 병종으로 수호군(守護軍)이 있었는데, 능(陵)을 비롯한 특수 지대를 지키기 위하여 마련된 것으로 수성군과는 엄격한 의미에서 구분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혼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진이 설치되지 않았던 지역임에도 방위의 중요성 때문에 수성군이 배치되기도 했다. 한편 양인이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는 병종으로서 1년에 3개월간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에 지방 군제에 대한 대대적인 군제 개편이 단행되면서 독립된 병종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다만 일반 명사의 의미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용례

命各道各官 分其民戶貧富强弱 以給助戶 議政府啓 外方民戶 富强者多得助戶 而貧乏者反不得助戶 流移失所 軍額日減 願令各道差等詳定 (중략) 一 守城軍及日守兩班止用三四結以下者 不許用 五六結以上者 亦不給奉足(『태종실록』 4년 5월 23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閔賢九, 『朝鮮初期의 軍事制度와 政治』, 韓國硏究院, 1983.
  • 陸軍士官學校 韓國軍事硏究室, 『韓國軍制史 - 近世朝鮮前期篇』, 陸軍本部,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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