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佛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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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보살 등 불교에서 예배하는 대상을 조형한 조각상(彫刻像)을 통칭하는 말.

개설

불상(佛像)은 좁은 의미에서 부처의 형상을 의미하나 불교에서 예배의 대상이 되는 상(像)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주로 부처의 형상을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佛畵)와 구별하여 조각상을 지칭한다.

불상을 조성하게 된 계기는 불교를 믿는 신도들이 관념 속에서 존재하던 부처를 형상으로 제작해 예배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불교의 변천과 전래에 따라 여래상(如來像), 보살상(菩薩像), 나한상(羅漢像), 조사상(祖師像), 천(天) 등 다양한 종류의 불상이 제작되었다.

유래

불상은 부처가 열반한 후 500년이 지난 뒤부터 조성되었다. 불상이 조성되지 않았던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에 사람들은 일반 사람과는 구별되는 신성한 대상인 부처의 모습을 조성하는 것은 신성(神聖)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탑(塔), 법륜(法輪), 부처가 앉았던 금강보좌(金剛寶座) 등 석가모니의 행적과 관련된 유물들이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불상이 사람의 형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세기경으로 인도의 쿠샨왕조 시대에 간다라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간다라 지역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곳으로 서구적인 얼굴의 불상이 조성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 중북부의 마투라 지역에서도 인도 고유의 조각 전통에 따른 불상이 조성되었다.

320년 북인도를 통일한 굽타왕조가 융성한 불교미술을 발전시키면서 불상 조성은 전성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제작된 불상은 균형 잡힌 신체 비례, 건장한 체구, 긴장감 넘치는 의습 표현이 특징이다.

인도에서는 예배의 대상인 부처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도상 조형에 규범을 두었다. 부처의 초인간적인 신체 표현은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로 규정하였으며 존상의 성격과 의미에 따라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설법인(說法印) 등의 수인(手印)을 정하였다. 이러한 도상의 규범들은 인도에서 성립되었으며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새로운 의미의 도상이 첨가되기도 하였다.

내용 및 변천

(1) 삼국시대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건 삼국시대로 4세기 말에 전래되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다. 불상은 불교가 전파되면서 같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존하는 삼국시대 불상 중에서 조성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불상은 539년 혹은 599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 상은 고구려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법의의 주름이 양옆으로 뻗쳐 약간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모습이 북위시대의 6세기 초 불상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삼국시대 불상은 중국의 남북조시대부터 수대(隨代)에 조성된 것과 유사하다.

이 시기 불상들에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면, 얼굴이 갸름하며 법의는 양 어깨를 덮는 통견(通肩)이다. 옷 주름은 좌우가 대칭으로 뻗어 있으며, 목에는 불상의 목 부분에 나타나는 세 줄의 주름[三道]이 없고, 수인은 통인(通印)이다. 큰 주형의 광배 안에 3존을 조형하는 일광삼존(一光三尊) 형식이 유행하였다.

또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유행하였는데 이는 부처가 태자 시절 출가하여 중생 구제의 큰 뜻을 품고 사색하는 태자사유상에서 연원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반가사유상은 미륵신앙(彌勒信仰)의 유행으로 조성된 미륵보살로 추정된다. 6세기 후반에는 대규모 불상 조성도 이루어져 신라에서는 경상북도 경주 황룡사(皇龍寺)에 장육상(丈六像)이 조성되었으며 백제에서는 태안마애삼존불(泰安磨崖三尊佛),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 등 마애불(磨崖佛)이 많이 조성되었다.

7세기 중엽인 삼국시대 말에는 앞면에만 부조로 불상을 조성했던 것과는 달리 옆면이나 뒷면에도 묘사를 하여 입체 조각으로 발전하게 된다. 관음신앙(觀音信仰)의 유행으로 뛰어난 금동관음불상들이 조성된 것도 특징적이다.

(2) 통일신라시대

불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정신적 기틀의 역할을 하였다. 통일 후 국교(國敎)가 되어 사찰 건축, 불상 조성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불교문화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또한 당(唐)과의 교류로 승려들이 유학을 가면서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 등의 불교 교파가 생겨났다.

이 시기 불상들은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아 불상 양식의 시대 구분이 가능한데, 석굴암(石窟庵)이 완성되는 8세기 후반이 전성기이다. 이 시기 불상들에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은 얼굴은 근엄하며 법의는 통견과 더불어 한쪽 어깨를 덮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이 많이 나타난다. 옷의 주름은 좌우 대칭보다는 자유로운 표현이 많으며 목에는 삼도가 나타나고 수인은 부처의 종류에 따라 달라졌다. 불좌상은 대부분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설법인, 시무외인, 항마촉지인을 한 예가 많은데 촉지인은 부처가 해탈하여 깨닫는 것을 상징하는 수인으로 석가모니불만이 할 수 있는 수인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이나 약사불(藥師佛)에서도 나타난다.

미륵신앙이 유행했던 삼국시대와는 달리 현세에서 선을 쌓아 내세에는 아미타불이 있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길 기원하는 아미타신앙(阿鋼陀信仰)이 유행하면서 많은 수의 아미타여래상이 제작되었다.

8세기 후반을 정점으로 불상에 대한 예배보다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추구하는 선종(禪宗)이 유행하면서 불상 제작은 감소하고 조형미는 쇠퇴하였다.

8세기 말에서 9세기에는 석조상이나 철불상이 많이 조성되었는데 선종 사찰에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대고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봉안되었다. 이는 원래 밀교(密敎) 종파의 금강계(金剛界) 법신불인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성격을 가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잡밀(雜密) 계통의 화엄사상(華嚴思想)이 들어왔기 때문에 화엄의 주존불로 조성된 것이다. 잡밀은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에 의거한 체계적인 밀교인 순밀이 형성되기 이전에 비조직적이고 단편적인 형태로 존재했던 밀교를 말한다.

(3) 고려시대

고려 태조왕건은 고려의 건국이 불력(佛力)에 의한 것이라고 믿으며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한 탑과 불상 조영을 추진하였다.

이 시기에는 통일신라말기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촉지인의 불좌상이 계속 유행하였으며 지방 호족(豪族)들의 불사(佛事) 후원으로 지역별로 특색이 뚜렷한 몇 가지 양식이 유행하였다. 중국 송(宋)이나 요(遼)의 양식을 반영한 통통하면서도 풍만한 불상들이 강원도의 월정사(月精寺), 한송사지(寒松寺址), 신복사지(神福寺址) 등에 조성되었다. 또한 강원도 원주, 경기도 광주, 충청남도 충주 지역에서는 거대한 철불들이 조성되었고, 충청남도 논산시에 위치한 관촉사(灌燭寺)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과 같이 큰 몸체에 관을 쓴 불상이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고려말 원나라 간섭기에는 원의 라마 불교가 전해져 라마 불상 양식이 도입되었다.

(2) 조선시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불교는 큰 타격을 받았지만 왕실과 민간의 기복을 위한 불사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불상의 조형미와 예술성은 이전 시대에 비해 퇴보하였다.

조선시대의 불상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전후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데 전기는 고려적인 요소와 더불어 명나라 불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후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구국에 앞장섰던 승병장(僧兵將)들이 주축이 되어 대대적인 불사들이 진행되면서 많은 수의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 시기 불상은 청나라의 불상들과 교류한 흔적이 거의 없어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현저하게 줄어든 상황에서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되었다. 또한 지역과 제작 시기에 따라 불상 제작을 전문적으로 하는 조각승(彫刻僧)들이 유파를 형성하여 불상 조성에 참여한 것이 특징이다.

전쟁이 끝나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불사가 있어났던 17세기에는 경상북도 남부 지역을 근거지로 한 현진·청헌파, 전라남도 일대에는 응원·인균파와 무염파, 전라북도를 근거지로 충정도·경기도·황해도에서 활동한 수연파,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에서 활동했던 법령파 등 5유파의 조각승들이 유파만의 특징을 지닌 불상들을 제작하였다.

종류

불상의 종류는 존상(尊像), 조성 재료, 크기에 따라 구분된다. 불교가 여러 종파로 분화하면서 각 종파별 교리에 의거한 다양한 존상의 불상이 제작되었다. 남방을 중심으로 한 소승불교(小乘佛敎)는 대부분 부처의 형상을 나타낸 여래상(如來象)만을 조성하였다. 다양한 종류의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건 대승불교(大乘佛敎)가 발달하면서부터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아미타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아축불(阿閦佛) 등의 부처와 관음(觀音), 세지(勢至), 문수(文殊), 보현(普賢), 지장(地藏) 등 많은 보살들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불상들이 조성되었다. 보살상들은 단독으로 조성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여래상을 곁에서 보좌하는 협시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밀교가 흥행하자 인도 재래의 신들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명왕상(明王像)이 조성되었으며 호법신인 범천(梵天)·제석천(帝釋天) 등의 천, 부처의 제자들인 나한(羅漢)과 고승들도 예배의 대상이 되면서 조각상으로 제작되었다.

불상은 조성한 재료에 따라 금불(金佛), 금동불(金銅佛), 철불(鐵佛), 석불(石佛), 목불(木佛), 소조불(塑組佛), 도자불(陶瓷佛), 건칠불(乾漆佛)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크기에 따라 길이가 1장 6척 즉, 5m 정도이면 장육상(丈六像), 그 절반이면 반(半) 장육상, 장육상보다 크면 대불상(大佛像), 사람의 키와 같으면 등신상(等身像), 한 뼘 길이의 한 배 반이면 일책수반불상(一磔手半佛像) 등으로 구분한다.

참고문헌

  • 김리나, 『한국고대불교조각사연구』, 일조각, 1997.
  • 문명대, 『한국조각사』, 열화당, 1980.
  • 송은석,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17세기 조선의 조각승과 유파』, 사회평론, 2012.
  • 진홍섭, 『한국의 불상』, 일지사, 1976.
  • 최완수, 『불상연구』, 지식산업사,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