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목장(都目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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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이나 소명 등 각종 현황을 기록한 종합문서.

개설

도목장은 종합 또는 총괄한다는 의미의 ‘도목’과 문서를 의미하는 ‘장’의 합성어로, 종합문서 또는 총괄문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도목장의 앞에 사안이나 내용에 따라 손실·소명 등을 붙여 손실도목장(損實都目狀)·소명도목장(小名都目狀) 등으로 쓰여 총괄적 기재 장부를 의미할 때가 많았다.

내용 및 특징

도목장이 가장 빈번하게 쓰인 사례는 지방 관아에서 작성하는 공천(公賤)이나 봉족(奉足)·호수(戶首)의 명부처럼 특정 집단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명단류에 쓰이는 경우였다. 예컨대, 태종대에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기 위하여 작성한 서울과 외방의 처녀 명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속대전』에서는 지방의 공천이나 시정(侍丁)·봉족·호수 등의 명부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처럼 특정 목적을 위하여 작성하는 명단류를(명단 종류를) 의미하는 외에 특정 집단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작성한 장부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태종대에 호조(戶曹)에서 조세를 부과하기 위해 작성한, 각 도의 곡식 손실에 대한 총괄 장부가 ‘손실도목장’으로 지칭된 것이 그 사례였다. 각 관청에서 전조(銓曹)에 보내던 관리의 근면하고 태만한 상황 기록부이나, 환자(還上)를 진청(陳請)할 때 참고하던 명부(名簿) 역시 각별도목장(各別都目狀)·소명도목장 등 도목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변천

조선시대 이전에는 명단이나 물목류를 의미하는 용어로서의 도목장은 눈에 띄지 않았다. 고려시대의 경우 도목정사(都目政事)의 축약형으로서의 ‘도목(都目)’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관료의 근무 성적을 총괄적으로 매겨 연임·해임·면직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하므로 도목장에서의 도목과는 그 의미가 달랐다.

조선시대에 오면 공천·봉족 등의 이름과 입역처 등을 도목장에 기재하라는 내용, 호조의 손실도목장을 참고하여 조세 수취 규모가 적당한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상언(上言), 도목장에 등록된 외방의 갑사(甲士) 중에서 별시위를 임명하라는 내용 등 다양한 의미의 도목장이 나타났다. 특히 특정 사안에 관련된 인명부 이외에도 손실도목장의 경우처럼 특정 상황을 상세히 묘사한 종합적 기록이라는 의미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