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언(上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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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인(私人)이 왕에게 올리는 청원 문서 양식.

개설

상언(上言)은 사인이 국가에 진정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문서 중 하나로, 조선시대 사인으로서 국가에 올린 진정·청원과 관련하여 어떠한 움직임이 있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국가에 민원서로서 제출되는 유사한 문서로는 소지(所志)·발괄·원정(原情)·단자(單子)·의송(議送)·등장(等狀)·상서(上書) 등이 있다.

내용 및 특징

상언은 위로는 관원으로부터 아래로는 공사천(公私賤)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문서이다. 상언의 내용은 『유서필지』에 제시되고 있다. 『유서필지』에 제시된 내용을 보면, 상언은 효자·충신·열녀 등의 정려(旌閭)·정문(旌門)과 효자·충신·학행(學行)이 있는 자에 대한 증직을 왕에게 청원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러나 효자·충신·열녀를 칭찬하고 장려하기를 청할 때 도계(道啓)를 거치지 않고 상언하거나, 세세한 것으로서 해당 도(道)나 관청에 올려야 할 것을 상언한 자는 처벌받도록 하였다.

효자·충신·열녀 외에도 입후(入后)를 요청하거나 산송(山訟)과 관련된 경우에도 상언이 이용되었다. 상언이 상소와 다른 점은 상소는 대개 관원과 유생·사림이 왕에게 올리는 문서이지만, 상언은 관원으로서가 아니라 사인으로서 올리는 문서라는 점이다.

상소에는 이두를 쓰지 않았으나 상언에는 이두를 사용하였다. 상언식은 『전율통보』에 제시되고 있는데, 시면(始面)은 ‘모도모읍거구함성명서명(某道某邑居具銜姓名署名)’, 기두(起頭)는 ‘우근계신의단신의몸[右謹啓臣矣段臣矣身]’, ‘특몽천은아져라거온전차선계아이샨일바라안누온일이여견근계[特蒙天恩爲白良結望良白去乎詮次善啓向敎是事望良白內臥乎事是亦在謹啓]’이다. 상언의 구체적인 서식은 『유서필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름을 연명할 때에는 연도를 적은 아래쪽에 ‘신(臣)’ 자를 기입하고 성명 아래에 ‘등(等)’ 자를 쓰되 서명하지 않으며, 이름을 기록하는 차례는 문서의 가장자리에서부터 기입하며, 100명 정도에 한하여 3~4층으로 열서(列書)하도록 하였다. 다만 단함(單銜)일 경우는 ‘신성명서명(臣姓名署名)’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언 형식이 제시되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성언 형식을 따르지 않는 사례들이 많다. 상언를 올릴 때에는 작첩(作帖)을 하였다.

상언은 왕이 거둥할 때 올렸으며, 상언별감이 이를 담당하여 받아들였다. 임금이 거둥할 때 바치는 가전상언(駕前上言) 외의 상언은 호적과 대조하여 본인 여부를 확인한 후에 받아들였으며, 이후 상언한 원장(原狀)을 첨부하여 해당 관서에서 왕에게 계하였고, 왕이 처분한 문서는 담당 승지에게 내려졌다. 왕에게 올린 상언을 처리한 것을 보여주는 실례로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상언등록』을 들 수 있다.

의의

상언은 사인의 자격으로 자신의 생각을 왕에게 올릴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효자·충신·열녀·학행자에 대한 정려·정문·증직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어서 조선시대 유교 윤리 및 사회사의 참고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대전회통(大典會通)』
  • 『전율통보(典律通補)』
  • 『상언등록(上言謄錄)』
  • 『유서필지(儒胥必知)』
  •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 한상권, 『조선후기 사회와 소원제도 -상언·격쟁 연구-』, 일조각,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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