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逃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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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역을 지던 양인 장정이 도망하거나 사망하여 빈자리가 생긴 것.

개설

도고(導故)는 도망(逃亡)과 물고(物故)의 합성어이다. 물고란 우리나라의 독특한 한자어로 사망을 가리켰다. 군역 부담자가 도망하거나 사망하면 역을 부과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역이 면제되었다. 그러나 역이 저절로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시대 군역이 군총제(軍摠制)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군총제란 군현에 부과된 군역의 숫자가 인구 변동에 따라 변하지 않고 일정한 숫자가 고정적으로 배당되는 것을 말하였다. 따라서 고을 안에서 실질적으로 정(丁)의 숫자가 늘고 줄더라도 부과된 역총(役摠)은 변함이 없었다. 누군가가 역을 면제받으려면 그 빈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워 넣어야 했다.

내용 및 특징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에 따르면, 대개 음력 6·7월쯤 서울의 오군영이나 지방의 병영·수영 등 군영에서 고을에 문서를 보내 도망·사망·노제로 생긴 군역의 빈자리를 채우라고 하였다. 그러면 고을 수령은 각 면의 면임(面任)에게 새로 역을 부과할 사람을 찾아내도록 지시를 내려 그 결과를 ‘도노고성책(逃老故成冊)’으로 만들어 서울과 지방의 군영에 올려 보냈다.

새로 역이 부과되는 사람은 노제되는 사람과 가까운 아들, 아우, 조카 등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친척이 없으면 대신 군역을 질 사람을 구하지 못하여 노제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노제를 받으려면 부표채(付標債)·사정채(査正債)·마감채(磨勘債)·도안채(都案債)·개안채(改案債)·노제채(老除債) 등 여러 가지 명목의 수수료가 붙어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따라서 대신 채워 넣을 사람을 구하지 못하거나 각종 수수료를 내지 못하면 계속 군역을 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에 따라, 죽어서도 역을 면제받지 못하고 포를 내야 했던 것이 바로 백골징포(白骨徵布)였다(『숙종실록』 4년 5월 22일).

참고문헌

  • 『목민심서(牧民心書)』
  • 이재룡박사환력기념 한국사학논총간행위원회 편, 『이재룡박사환력기념 한국사학논총』, 한울, 1990.
  • 김용섭, 「조선후기 군역제의 동요와 군역전」, 『동방학지』 32, 1982.
  • 송양섭, 「18·19세기 단성현의 군역 파악과 운영: 『단성호적대장』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제40집, 2002.
  • 정연식, 「조선후기 ‘역총’의 운영과 양역 변통」,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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