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업(定大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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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대부터 현재까지 종묘제례의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의 의식 절차에서 연행되는 음악과 춤.

개설

정대업(定大業)은 보태평(保太平)과 함께 세종대에 회례연(會禮宴)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악과 춤이었는데(『세종실록』 29년 6월 4일), 세조대에 종묘제례(宗廟祭禮)에서 활용하기로 결정되어 종묘제례악으로 재탄생하였다(『세조실록』 10년 1월 14일).

내용 및 특징

정대업은 조종(祖宗)의 무공(武功)을 기리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세종대에는 16곡으로 구성되었는데 세조대에 11곡으로 정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악곡명이 바뀌거나 선율과 노랫말이 축소되고 청황종궁(淸黃鍾宮) 계면조(界面調)로 바뀌었다.

종묘제례에서 연행되는 정대업은 11곡으로 구성된다. 명칭은 소무(昭武), 독경(篤慶), 탁정(濯征), 신정(新定), 정세(靖世), 선위(宣威), 분웅(奮雄), 순응(順應), 총수(寵緌), 혁정(赫整), 영관(永觀)이다. 각 악곡의 노랫말에서 글자를 취해 제목으로 삼았다. 소무는 노랫말 중 제2구 ‘대를 이어 무공을 밝게 빛냈도다[繼世昭聖武]’, 독경은 제3구 ‘돈독할손 그 경사[遹篤其慶]’, 탁정은 제4구 ‘깨끗이도 무찌르사[于濯征]’, 신정은 제11구와 제12구 ‘무공을 완정하심은[耆定武] 신이 하심이로세[神之爲]’, 정세는 마지막 구 ‘세상 이로 평안토다[世以靖]’, 선위는 제11구 ‘천위를 펴셨도다[載宣天威]’, 분웅은 제1구 ‘장하고야 우리 용맹[我雄我奮]’, 총수는 제5구 ‘우리 황조 사랑 기대하며[徯我寵綏]’, 혁정은 제3구와 제4구 ‘혁노하사[爰赫我怒] 군대를 정비하도다[爰整我旅]’, 영관은 마지막 구 ‘끝마침 보이도다[永觀厥成]’에서 각각 두 글자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악곡명을 정하였다.

정대업을 연행할 때 시작과 그침은 진고(晉鼓), 박(拍), 축(柷), 어(敔) 같은 타악기 연주로 신호를 보내어 알린다. 종묘제례의 아헌례에서 연주되는 정대업은 집사의 ‘드오[擧揮]’라는 외침에 이어 진고를 10번 친 후[晉鼓十通], 축을 치고[鼓柷三聲], 진고를 치며[擊鼓一通], 박을 치는[擊拍一聲] 방식으로 시작을 알린다. 악무의 연행을 멈출 때에는 집사의 ‘지오[偃麾]’라는 외침에 이어 박과 진고를 3번 치고 박과 진고를 두 번째 칠 때 어를 3번 반복 연주한다.

종헌례에서는 집사의 ‘드오’라는 외침에 이어 진고를 3번 치고, 박을 1번 치면서[擊拍一聲] 시작한다. 악무의 연행을 멈출 때에는 집사의 ‘지오’라는 외침에 이어 박과 진고를 3번 치고, 박과 진고를 두 번째 칠 때 대금(大金)을 10번 치고, 어를 3번 반복 연주한다.

정대업을 연주할 때 추는 춤을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 또는 무무(武舞)라고 한다. 그 동작을 담은 『시용무보(時用舞譜)』가 현재 전해져 조선시대 정대업지무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제후국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육일무(六佾舞)를 추다가 대한제국기에 팔일무(八佾舞)로 격상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다시 육일무로 바뀌었고, 1969년부터 팔일무로 다시 정비되었다. 정대업지무를 춤출 때는 손에 의물을 드는데, 조선시대에는 목검(木劍)·목창(木槍)·궁시(弓矢)를 사용하였으며, 현재에는 목검과 목창만 사용한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 『악학궤범(樂學軌範)』
  • 『종묘의궤(宗廟儀軌)』
  • 『시용무보(時用舞譜)』
  • 『대악후보(大樂後譜)』
  • 『춘관통고(春官通考)』
  • 『속악원보(俗樂原譜)』
  • 『대한예전(大韓禮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全)』, 민속원, 2004.
  • 김영숙·이숙희·송지원, 『종묘제례악』, 국립문화재연구소/민속원, 2008.
  • 장사훈, 「종묘제례악의 음악적 고찰」, 『國樂論攷』, 서울대학교출판부,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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