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비탕(歸脾湯)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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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귀비탕 |
한글표제 | 귀비탕 |
한자표제 | 歸脾湯 |
상위어 | 의학(醫學) |
하위어 | 감초(甘草), 당귀(當歸), 목향(木香), 산조인(酸棗仁), 석창포(石菖蒲), 용안육(龍眼肉), 지실(枳實) |
관련어 | 가미육군자탕(加味六君子湯) |
분야 | 문화/의학·약학/처방 |
유형 | 약 |
집필자 | 김호 |
약재 | 당귀(當歸), 용안육(龍眼肉), 산조인(酸棗仁), 지실(枳實), 석창포(石菖蒲), 감초(甘草), 목향(木香) |
약효 | 심경(心經)과 비장의 손상으로 나타난 불안 증세를 치료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귀비탕(歸脾湯)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40년 12월 18일 |
지나친 생각으로 심경(心經)과 비장이 손상되어 불안한 신경증과 더불어 가슴이 적체된 듯한 증세를 치료하는 처방.
개설
귀비탕(歸脾湯)은 생각과 걱정이 너무 많아 심비(心脾)를 손상하여 건망증과 불안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정신이 혼란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증세를 치료한다. 비장과 심장을 보하여 혈을 비장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에서 귀비탕이라고 한다. 세종대 의서 『의방유취』에는 귀비탕을 생각이 지나쳐 심비가 손상되어 건망증과 불안 증세가 나타난 경우 처방한다고 했다. 또한 16세기의 『의림촬요』「정충경계건망문(怔忡驚悸健忘門)」에는 땀과 열이 나고 생각이 너무 많아 비(脾)를 손상하여 생긴 건망증을 치료하는 데 귀비탕을 처방하였고, 『동의보감』에서도 건망증에 귀비탕을 처방하였다. 부인의 비위가 울체되어 혈기가 통하지 않는 증세에도 귀비탕을 권했다. 특히 걱정이 많아 심비를 상하여 건망증과 불안증이 된 경우를 치료한다고 했다. 18세기 『광제비급』 「건망」 조에는 "생각이 많아 심비를 손상시킨 경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땀을 흘리고 혹 걱정으로 건강과 불안증을 치료한다. 특히 부인들의 걱정으로 인한 우울과 불안 증세에 효능이 있다."고 했다. 19세기 말 『부방편람』에도 ‘건망’의 주치약으로 귀비탕을 소개하고, 걱정과 불안으로 땀이 나고 불면 증세가 지속되는 데 귀비탕이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제조법
당귀(當歸)·용안육(龍眼肉)·볶은 산조인(酸棗仁)·지실(枳實)·석창포(石菖蒲)·감초(甘草) 각 1돈, 목향(木香) 5푼, 생강 5편, 대추 2개를 넣어 달여 복용한다.
효능
지나친 걱정으로 심비(心脾)가 손상되어 건망증과 불안 증세가 나타난 것을 치료한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시대에 귀비탕은 마음을 다스리면서 동시에 비위를 보하는 대표적인 약물로 처방되었다. 특히 근심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하여 적체된 듯한 증세를 치료하는 데 자주 활용되었다. 선조는 음식을 꺼리는 증세로 귀비탕을 복용한 바 있다(『선조실록』 40년 12월 18일). 또 『승정원일기』에는 인조대 중전의 환후를 논의하면서, 심비경(心脾經)이 허열(虛熱)하므로 마음을 다스리고 비위를 보하는[治心補胃] 약재를 사용해야 치료할 수 있다며 의관들이 귀비탕을 권한 기록이 있다. 숙종대에도 귀비탕은 맛이 쓰지 않아 비위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심비의 혈기가 부족하거나 안질과 건망증이 심한 경우 처방하는 약이므로 기와 혈을 모두 보할 수 있다고 인정되었다. 당시 숙종이 각혈하는 증세를 보이자, 비장의 혈기를 조섭하지 않으면 피를 토할 수 있다고 진단한 의관들은 귀비탕이 비장을 맑게 하고 혈기를 보한다고 추천하였다. 특히 비위만을 보하려고 하다가 온조(溫燥)한 약물에 치우치거나 심경(心經)을 다스리려다가 한량(寒涼)한 데 치우치게 되는데, 귀비탕은 비위를 보하고 피를 토하는 증세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온조, 한량의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가장 적합한 약물로 권해졌다.
참고문헌
- 『의방유취(醫方類聚)』
- 『의림촬요(醫林撮要)』
- 『동의보감(東醫寶鑑)』
- 『광제비급(廣濟秘笈)』
- 『부방편람(附方便覽)』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