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훈부(忠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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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신 관련 업무와 그들의 관리를 관장하던 관서.

개설

공신지부(功臣之府), 맹부(盟府), 운대(雲臺), 인각(麟閣), 훈부(勳府)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충훈부는 공신을 관리하는 관서로, 정무적인 업무는 없었다. 주로 공신의 책록에 참여하거나 공신의 입증을 위한 등급(等給)의 발급 및 회맹제 등을 주관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392년(태조 1) 8월 공신 관련 사무를 위해 공신도감을 설치하고, 사(使) 1명, 부사·판사·녹사·부녹사 각 2명을 두었다. 1414년(태종 14) 공신도감 소속의 녹사를 승으로, 부녹사를 녹사로 개칭하였고, 1434년(세종 16) 공신도감을 충훈사로 개편하였다.

이후 계유정란으로 후일의 세조인 수양대군이 공신에 책봉되고 충훈사에 소속된 것을 계기로 1454년(단종 2) 1월 정1품 아문으로 승격되면서 충훈부로 개편하였다. 이 시기 충훈부로의 개편은 증원된 공신의 관리뿐 아니라 공신의 정치적 비중이 확대됨을 의미한다.

조직 및 담당 직무

충훈부 소속의 공신은 1품부터 2품까지 군(君)이 책봉되는데, 다만 자신의 공훈으로 공신에 책봉된 친공신(親功臣)의 경우에는 ‘부원(府院)’ 두 글자를 더하였다. 군으로 책봉된 공신들에게는 서리 1명이 배정되었고, 정1품 군에게는 각 2명의 조례(皁隷)가 예속되었다. 이 밖에도 관서 운영을 위해 경력 1명, 도사 1명을 두었다. 이속(吏屬)으로 서리 14명, 고직 7명, 사령 15명, 문서직 1명, 군사 4명, 방직(房直) 2명이 있었다.

충훈부의 임무 가운데 중요한 것은 아마도 공훈 책록에 참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공훈을 책정할 때 의정(議政)들과 함께 논의하여 공을 심사하였고, 원종공신훈(原從功臣勳)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소속 공신의 자손을 관원에 추천할 수 있었는데, 이를 위해 1482년(성종 13) 3월부터는 의금부·병조·형조·사헌부·한성부·사간원 등의 관원이나 공신의 자손으로서 죄를 범한 사람들은 죄가 결정된 뒤에 그 죄명을 공문으로 충훈부에 이첩(移牒)하며 이를 장부에 기록하여 비치해두었다가 증빙자료로 삼도록 하였다(『성종실록』 13년 3월 1일).

충훈부는 이 밖에도 순회묘·소현묘·민회묘·의소묘·효창묘를 지키는 수위관 2인씩을 소속 공신의 적자손으로 추천하였고, 공신들의 모임인 회맹제를 주관하며, 공신들이 음력 2월·5월·8월·12월 국왕에게 올리는 중삭연(仲朔宴)을 주관하였다. 또한 공신이나 그 자손들에 대한 특권을 규정한 완문이나 등급(謄給) 및 입안을 발급하기도 하였는데, 발급 범위가 비단 특권의 범위 내에 있는 공신과 그 자손에 한정되지 않고 이를 벗어나기도 하였다.

충훈부의 관사는 처음에는 오늘날의 종로구 원서동 일대인 한성부 북부 광화방(廣化坊)에 있다가 중종 초에 오늘날의 종로2가, 관훈동, 인사동 일대인 중부 관인방(寬仁坊)으로 이전하였다. 임진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조에 중건하였다. 부속건물로는 기공각(紀功閣)이 있었다.

변천

명종조에 경력이 혁파되었고, 고종대 『대전회통』 단계에 이르면 겸도사 1인을 두되, 공신의 적장자손으로 충의위(忠義衛) 소속이며 6품 이상의 관직에 재직하였던 인원을 단망(單望)으로 임명하도록 하였다. 또한 도사 1명도 공신의 자손으로 임명하도록 하였다. 정원이 없던 당상관을 3인으로 한정하였고, 관직에 있는 자는 상주(上奏)하여 임명하되 친공신이 없으면 승습(承襲)군(君)으로써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충훈부는 원종공신의 관서인 충익부(忠翊府)를 합병하였다. 즉 충익부는 연산군 때 충익사로 격하되었다가 이후 충훈부에 합병되었으나, 광해군 때에 충익부가 다시 설치되었다가 얼마 후 혁파되어 병조에 이속되었다. 충익부는 인조대 다시 충훈부에 속하게 하였다가, 1676년(숙종 2) 다시 병조에 이속되었으나 후에 다시 충훈부에 속하였다. 충훈부는 1894년(고종 31) 기공국(紀功局)으로 개칭되면서 의정부에 합병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육전조례(六典條例)』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한충희, 『조선초기의 정치제도와 정치』, 계명대학교출판부, 2006.
  • 남지대, 「조선초기 예우아문의 성립과 정비」, 『동양학』24,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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