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패(隨營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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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병마절도사의 친병(親兵).

개설

조선시대 평안도 병영에는 각 진(鎭)에 예속되지 않고 병안도병사가 직접 거느리는 수영패라는 친병이 있었다. 이들은 북경으로 가는 사신 일행을 여진족[野人]의 습격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호송 군사로 차출된 군대였다. 본래 별도의 호송군이 있었으나 서북 변방의 사정이 좋지 않을 때 특별한 사태에 대비하여 호송군 외에 수영패를 데리고 갔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광해군 때에 이르러 수영패는 훈련을 받는 정식 군대에 편입되었다. 당시 후금의 정세가 심상치 않았으므로 훈련된 군사들이 많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본래 수영패에는 내수사 노비들과 함께 평안도의 부유한 민호들이 대거 투속하여 문제가 되고 있었는데, 이들 투속자들을 모두 찾아내어 정군(正軍)으로 편제하고 군사로 양성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평안도의 군사제도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였다. 이는 병자호란 이후 청(淸)나라와의 군사·외교 관계로 인한 것이었다. 군사를 양성할 수 없었던 평안도에서는 부방(赴防)하는 군인들을 돌려보내는 파방(罷防)을 단행하고 대신 모든 군사에게 포목을 내도록 하였다. 청나라와의 사신 접대에 필요한 지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포(布)를 거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수영패도 연간 포 3필(疋)을 내는 등 많은 부담을 떠맡았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평안도의 양역제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인조 말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1647년(인조 25)에 수영패에 부과된 군포 3필은 2필로 줄어들었고, 평안병사가 관장하던 군포는 1650년(효종 1)에 비변사로 이관되었다.

수영패에 부과된 포 3필은 2필로 줄어들었으나 그들에게는 군병(軍兵)으로서의 역(役), 발군(撥軍)으로서의 역 등이 함께 부과되어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그러던 중 1721년(경종 1)에는 모든 평안도 군인의 역가(役價)를 포 1필로 통일하는 조치가 단행되었다. 그것은 역가 부담을 1필로 통일하는 조치일 뿐 아니라, 포를 납부하는 납포(納布)와 직접 군역을 수행하는 입역(入役)을 모두 부담하던 정군들에게 납포의 의무를 없앤 조치였다. 이로써 정군과 보인(保人)을 확연히 구분하여 군사제도를 운영하려는 것이었다.

정군과 납포군으로 군인을 확연히 구분하는 일은 그로부터 10년 후 평안도어사이종성(李宗城)의 건의로 1731년(영조 7)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결책을 마련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른바 정삼장(精三壯)이라 부르는 병영의 정초군(精抄軍)·삼수군(三手軍)·장무대(壯武隊) 8,900여 명의 1필 역 부담을 없애고 그 결손분은 비변사에서 관장하는 감영과 병영의 포를 지급하여 채우도록 하였다. 이어서 수영패의 납포도 없애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조직 및 역할

주로 북경으로 가는 사신을 호위하였으며 짐을 수송하는 일도 맡았다.

변천

1731년(영조 7)의 수영패에 대한 역 부담 경감은 그다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던 듯하다. 1746년(영조 22) 당시에도 평안도의 군정들이 모두 1필을 내어 다른 도에 비해 역 부담이 헐하지만, 병영 소속의 수영패는 그렇지 못해서 스스로 신포(身布)를 갖추어서 전마와 군장을 갖추고 부번(赴番)하는데, 3~4일 거리를 가는 동안 말을 세내고 장비를 빌려 왕복하는 데 근 10일 남짓 걸리니 신포 외에 각종 비용이 적잖이 들어가서 가난한 백성들이 한 번 이 역에 들어가고 나면 감당을 못하고 파산하고 만다는 것이었다.

이때의 조처는 후에 어찌 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1750년(영조 26) 균역법이 시행될 때에나 1758년(영조 34) 『관서양역실총(關西良役實摠)』이 간행될 때에도 수영패에 관한 논의는 별반 없었다. 이것으로 보아 수영패의 납포 면제는 1740년대 후반에 가서야 완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수영패의 입번은 계속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도 수영패가 입번하였다는 보고 기사가 있다.

참고문헌

  • 권내현, 「조선 후기 평안도 방어 체제의 정비와 이완」, 『사학연구』 69, 2003.
  • 정연식, 「17·18세기 평안도 양역제의 변천」, 『한국문화』 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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