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기군(別技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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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훈련도감에 속한 정예 군병.

개설

별기군은 조선후기 훈련도감(訓鍊都監)의 마병(馬兵)보군(步軍), 그리고 그 족속 중에서 팔 힘이 세고 신체가 좋으며 손재주가 능숙한 자를 별도로 선발하여 항상 기예를 익히도록 한 정예 병종의 하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별기군의 정확한 창설 연도는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일성록』에 의하면 1783년(정조 7) 3월 22일에 별기군의 존재가 최초로 기사에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정조 초 호위청(扈衛廳) 축소 및 숙위소(宿衛所) 창설과 같은 왕권 강화를 위한 호위 군사력 정비 과정에서 창설된 것으로 짐작된다. 왕과 가까운 거리에서 호위를 주로 담당하였다.

조직 및 역할

별기군의 조직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조 초반 ‘별기군 삼번(三番)’이라는 기록이 있고, ‘별기군 60명’이라는 기록이 『일성록』에 있는 것으로 보아 60명이 세 개의 번으로 나누어 편성된 듯하다. 별기군은 평소 교관을 정하여 18기(技)를 익히되 2월부터 9월까지는 비파정(琵琶亭)에서, 10월부터 1월까지는 하도감(下都監)에서 훈련하도록 하였다.

변천

1788년 1월 장용영(壯勇營)이 개편되고 그 군안(軍案)이 수정되면서 별기군은 정원이 일부 줄어 장용영으로 이속되었다(『정조실록』12년 1월 22일). 순조대 들어 장용영이 혁파되면서 별기군은 다시 이전의 정원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왕의 호위 군사력 확충을 위해 별기군 가운데 무예별감(武藝別監)에 적합한 자를 선발하여 3명의 후보자를 병조(兵曹)에 보내고 왕에게 아뢰어 지명을 받도록 하였다. 1810년(순조 10) 3월 순조는 별기군을 원래보다 더 많이 선발하여 자신의 친위 세력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신료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순조실록』10년 3월 7일). 철종대에도 별기군에서 뽑은 군병으로 무예별감을 증원하기도 하였다(『철종실록』12년 11월 1일).

별기군은 훈련도감이 1882년 6월 임오군란을 계기로 거의 해체되면서 자연스럽게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만기요람(萬機要覽)』
  • 『훈국총요(訓局摠要)』
  • 배항섭, 『19세기 조선의 군사 제도 연구』, 국학자료원, 2002.
  • 최병옥, 『개화기의 군사 정책 연구』, 경인문화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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