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흥부(敬興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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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대에 중궁의 요속(僚屬)을 관장한 관서.

개설

경흥부는 1392년(태조 1) 문무백관의 관제를 정할 때 중궁(中宮)의 요속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396년 태조의 계비(繼妃)인 현비(顯妃)가 사망한 뒤에도 운영되다가 정종의 즉위와 함께 혁파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후 문무백관의 관제를 새로 정할 때 중궁의 요속을 관장하기 위해 설립하였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조직 및 역할

처음 설치될 당시에는 정3품의 좌·우사윤(左·右司尹) 각 1명, 정7품의 승(丞) 2명, 정8품의 주부(主簿) 2명, 8품 거관(去官)서리(書吏) 4명으로 구성되었다. 1397년 에 정2품 이상관이 겸하는 판사(判事)가 임명되어 사윤 이하를 지휘하면서 부사를 총괄하였다.

변천

경흥부는 1396년 태조의 계비인 현비가 사망한 뒤에도 혁파되기는커녕 정2품 이상이 겸하면서 부사를 총괄하는 판사가 설치되는 등으로 그 관아 지위가 강화되면서 운영되었고, 1399년(정종 즉위) 정종 즉위와 함께 혁거되었다.

참고문헌

  • 한충희, 『조선초기의 정치제도와 정치』, 게명대학교출판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