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저(韭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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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를 소금에 절여서 담근 김치.

개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따르면, 부추는 게으른 사람의 나물이라 해마다 심지 않아도 되며, 1년에 서너 번 베어 내도 그 뿌리가 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부추는 조선시대에 비교적 쉽게 구해서 평상시에 식용할 수 있는 식물이었다. 파, 달래, 마늘과 함께 냄새가 강한 훈채(葷菜)의 하나였기 때문에 제사를 앞둔 제관(祭官)은 먹지 말아야 하는 식품이었다. 반면 부추로 만든 구저(韭菹)는 각종 제사상에 오르는 제수(祭需)로 이용되었다.

만드는 법

제수로 쓰는 구저를 만드는 방법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순무김치인 청저(靑菹)와 미나리김치인 근저(芹菹) 등 구저와 함께 제사상에 올랐던 김치류가 소금을 이용해 절인 음식이었음을 고려하면, 구저를 만드는 방법 역시 비슷하였을 것이다. 부추를 소금으로 절이는 조리법은 ‘엄구채(淹韭菜)’라는 이름으로 『산림경제(山林經濟)』, 『증보산림경제』, 『해동농서(海東農書)』, 『고사신서(攷事新書)』, 『농정회요(農政會要)』,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등에 나온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굵고 싱싱한 부추를 골라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뺀 뒤, 자기 그릇에 부추 한 켜, 소금 한 켜를 번갈아 넣어 2~3일 동안 절여 둔다. 몇 차례 뒤적여 두는 데 그 사이에 생긴 소금물에다 참기름을 살짝 넣어 잘 버무려 저장한다.

연원 및 용도

조선시대 구저, 즉 부추김치는 두(豆)에 담아 올리는 제수로 주로 이용되었다. 조선의 국가 오례(五禮) 중 주로 길례(吉禮)에서 친제사직의(親祭社稷儀), 제사직섭사의(祭社稷攝事儀), 주현제사직의(州縣祭社稷儀), 친협종묘의(親祫宗廟儀), 협향종묘섭사의(祫享宗廟攝事儀), 사시급납친향종묘의(四時及臘親享宗廟儀), 사시급납향종묘섭사의(四時及臘享宗廟攝事儀), 사풍운뇌우산천성황의(祀風雲雷雨山川城隍儀), 사영성의(祀靈星儀), 제악해독의(祭嶽海瀆儀), 제삼각산의(祭三角山儀), 제산천의(祭山川儀), 제목멱의(祭木覓儀), 친향선농의(親享先農儀), 향선농섭사의(享先農攝事儀), 향선잠의(享先蠶儀), 우사의(雩祀儀), 왕세자석전문선왕의(王世子釋奠文宣王儀), 유사석전문선왕의(有司釋奠文宣王儀), 주현석전문선왕의(州縣釋奠文宣王儀), 향조선단군의(享朝鮮檀君儀), 향고려시조의(享高麗始祖儀), 사마조의(祀馬祖儀), 향사한의(享司寒儀) 때에 진설하였던 음식이다[『세종실록』 오례 길례서례 찬실도설].

참고문헌

  • 『고사신서(攷事新書)』
  • 『광재물보(廣才物譜)』
  • 『농정회요(農政會要)』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산림경제(山林經濟)』
  •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 『해동농서(海東農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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