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어(眞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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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준치를 가리키는 한자어.

개설

청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인 준치를 가리킨다. 시어(鰣魚) 혹은 준치어(蠢峙魚)라고도 한다. 준치는 한반도의 서해와 남해 연안에서 난다. 매우 흔한 생선이면서 맛이 좋아서 진어(眞魚)라고 불렀다. 이노진어(伊老眞魚)라는 표기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원산지 및 유통

한반도의 서해와 남해, 일본 남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자란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경기도의 수원도호부, 남양도호부, 부평도호부, 충청도의 아산현과 서천군 일대에서 나는 토산이라고 했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는 생선 중에서 흔한 것은 민어(民魚)·조기[石首魚]·밴댕이[蘇魚]·낙지[絡締]·준치[眞魚] 등으로 서해 곳곳에서 나는데, 모두 맛이 좋다고 했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가시가 많고 등은 푸른데 맛이 좋고 깔끔하다고 했다. 곡우가 지난 뒤에 우이도(牛耳島: 현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면 근처)에서 잡히고, 이때부터 북으로 이동하여 6월이면 해주 근처에 이른다고 했다. 어부들이 진어 떼를 쫓아가 잡는데, 늦게 잡히는 것은 맛이 없다고 했다.

연원 및 용도

진어는 세종 때 명나라에서 요청한 진상 물품에 들어 있다. 그 숫자도 무려 1,830마리나 되었는데(『세종실록』 11년 7월 19일), 북경까지 보내려면 생진어(生眞魚)가 아니라,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진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천신진상등록(薦新進上謄錄)』에서는 4월에 종묘(宗廟)에 천신(薦新)해야 하는 것으로 생진어가 있다. 이응희(李應禧)의 『옥담시집(玉潭詩集)』에는 진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해산물이 강가 시장에 가득해 / 海族塡江市

진어가 밥반찬으로 올라 기쁘구나 / 眞魚喜入粲

많은 가시는 둥근 은실 모양이고 / 亂鯁銀絲細

흰 비늘은 색이 차갑고 작아라 / 圓鱗雪色寒

솥에 넣어 탕을 끓여도 좋고 / 可下燒湯鼎

회를 쳐서 쟁반에 올려도 좋네 / 宜登設膾盤

만약 맛이 좋기로 말한다면 / 若論佳味勝

당연히 팔진미의 반열에 들리라 / 應列八珍間

이와 같이 진어는 굽거나 탕을 끓이거나 날것을 회로 쳐서 먹기도 했다. 잔가시가 많지만 맛이 좋다고 했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속담에 5가지 한이 있다고 하면서 그중 하나가 준치의 뼈가 많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는 시어가 요샛말로 준치라고 했다. 이로 미루어 조선후기에는 진어와 시어 대신에 준치라는 말을 민간에서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어란 말의 유래를 두고 빙허각 이씨는 봄철에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어라는 말도 사용했다. 또 진어의 뼈를 없애는 법이 별도로 나온다. “준치를 씻어 토막 지어 그 조각을 도마 위에 세우고 허리를 꺾어 베나 모시 수건으로 두어 머리를 누르면 가는 뼈가 수건 밖으로 내밀 것이니 낱낱이 뽑으면 가시가 적으니라. 토막을 삶아 체에 걸러 갖은 양념하여 도로 손으로 준치 토막처럼 만들거나 꿩[生雉]만두처럼 하거나 하여 녹말을 씌워 먼저 삶던 물에 도로 넣고 기름[油], 간장[醬], 파 등을 넣어 다시 끓이면 뼈 하나도 없이 좋으니라.”고 했다. 이 처럼 조리법이 진화할 정도로 진어는 맛이 좋았다.

참고문헌

  • 『규합총서(閨閤叢書)』
  • 『도문대작(屠門大嚼)』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옥담시집(玉潭詩集)』
  • 『자산어보(玆山魚譜)』
  • 『천신진상등록(薦新進上謄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