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枸杞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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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나무에서 열리는 타원형의 붉은색 열매.

개설

구기자는 괴좃나무 또는 괴좆나무라고도 하는 가짓과 나무의 열매이다. 조선시대에는 구기자의 의약적(醫藥的) 효능으로 인해 약을 조제할 때 약재로 쓰거나, 술 또는 차로 만들어 음용하였다.

원산지 및 유통

구기자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자생하던 구기자나무의 열매이다. 가을에 채취하며 대개 말려서 쓴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지에서 생산하여 약재로 진상하였다[『세종실록』 지리지 충청도][『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현재는 지역 특산물로 충청북도 청양군과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재배되는 구기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연원 및 용도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구기자주와 관련된 고사가 실려 있다. 옛날 하서(河西)로 가던 사신이 실제 나이는 395세이지만 16~17세 정도로 보이는 여인을 만났다. 장수와 불로의 비결을 궁금해하는 사신에게 여인은 구기자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 방법대로 만든 구기자주를 먹고 사신은 300년을 살고도 늙지 않았다. 구기자주를 13일간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왕성해지며, 다시 100일을 마시면 얼굴이 고와지고 백발은 다시 검어지며 빠졌던 이가 다시 나서 땅 위에 있는 신선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재인용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구기자가 불로와 장생, 보익(補益)의 효능을 지닌 식품이라는 내용이 조선시대 문헌에 산재하는 것으로 보아 구기자는 널리 알려져 있었던 듯하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비롯해 여러 의학서에서 구기자의 각종 효능을 강조하고 있으며, 구기자가 포함된 처방도 상당히 많았다. 이에 따라 조선후기에는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약용 또는 식용으로 이용하였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구기자로 차를 달여 마시거나, 탕약을 조제할 때 가감하는 약재로 썼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716년(숙종 42) 9월 14일에, 숙종이 구기자가 백발을 도로 검게 하고 빠진 이가 다시 나도록 하는 효능이 있다는 내용을 책에서 일찍이 본 적이 있다고 하며, 약방에 구기자차를 달여 올리도록 하교하자 약방이 이에 따랐다. 또한 1716년 10월 1일에 의하면 건강이 좋지 않은 숙종에게 약방에서 이전의 가감팔미탕(加減八味湯)에서 인삼을 빼고 대신 구기자 등을 더 넣어 달여 올렸다. 1765년(영조 41) 10월 22일, 1766년(영조 42) 1월 16일, 1769년(영조 45) 3월 7일 『승정원일기』의 기록에도, 영조가 즐겨 마시던 이중건공탕(理中建功湯)과 가감팔미원(加減八味元)의 처방에 구기자가 들어갔다가 빠졌다가 다시 들어간 일이 있었다.

민간에서는 구기자나무의 잎이나 싹은 주로 죽과 나물로 조리했으며, 구기자로는 대개 구기자차·구기자주·구기자죽을 만들었다. 구기자주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 『산림경제』에서는 구기자를 달인 물을 엿 상태로 곤 것에 누룩과 찹쌀을 섞어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고, 『산림경제』·『고사신서(攷事新書)』·『규합총서(閨閤叢書)』·『주찬(酒饌)』·『승부리안(陞付吏案)』주방문(酒方文) 등에서는 구기자를 갈아서 술에 담가 두는 방법을 소개했다. 후자의 방법이 더 많이 이용되었던 듯하다.

생활민속 관련사항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따르면,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구기자를 거둬서 술을 담가 마시면 수명이 연장되고 늙지 않으며 모든 풍증(風症)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고사신서(攷事新書)』
  • 『규합총서(閨閤叢書)』
  • 『山林經濟』
  • 『승부리안(陞付吏案)』
  • 『주찬(酒饌)』
  •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 『지봉유설(芝峰類說)』
  • 정연옥·박노복·곽준수·정숙진, 『야생화도감(여름)』, 푸른행복, 2010.
  • 한국식품과학회, 『식품과학기술대사전』, 광일문화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