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어(古道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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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엇과의 바닷물고기인 고등어의 한자어.

개설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서 고도어(古道魚)와 고도어(古刀魚)를 혼용하였다. 정약전(丁若銓)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원명(原名)은 벽문어(碧紋魚)이고, 속명(俗名)으로 고등어(皐登魚)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고도어는 주로 말려서 건어물 형태로 유통하였고, 국이나 젓갈 등을 만들어 먹었다.

원산지 및 유통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에서는 함길도(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등이 고도어의 주요 산지였다[『세종실록』 지리지 해주목 장연현][『세종실록』 지리지 함흥부]. 고도어는 난류성 물고기로서 한반도 연해에서는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어획되었다. 밝은 것을 좋아하는 고도어의 습성 때문에 낮보다 밤에 횃불을 밝혀 잡는 것이 수월하였다. 주로 말리거나 소금으로 염장한 후 전국적으로 유통하였다.

연원 및 용도

『자산어보』에는 등이 푸르고 무늬가 있다 하여 벽문어라고 기록하였다. 고도어는 주로 말린 형태로 유통하였는데, 말린 고도어는 중국에 조공으로 바치거나 왕실에 진상하였다(『세종실록』 3년 1월 13일)(『세종실록』 6년 6월 1일). 함경감사(咸鏡監司)를 지낸 이광좌(李光佐)는, 고도어는 비록 막 잡은 것이라 하더라도 어공(御供)이 될 수 없고 더군다나 말린 고도어는 쓸 곳이 없다고 하면서, 이처럼 긴요하지 않은 진상품을 없애 백성들의 노동을 견감(蠲減)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

『자산어보』에서는 고도어의 맛을 달콤하면서도 탁하다고 평하였다. 정약전은 고도어로 국을 만들거나 젓갈을 만들 수는 있지만, 회나 포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1830년대에 편찬된 『농정회요(農政會要)』에서는 고도어가 국·구이·회에도 적합하고, 소금에 절여도 맛이 좋다고 하였다.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고도어는 내장으로 젓을 담은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고도어 내장 젓은 함길도의 주요 진상품 중 하나였다(『세종실록』 3년 1월 13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농정회요(農政會要)』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자산어보(玆山魚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