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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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음식이나 약재로 쓰이는 채소.

개설

음식의 맛을 내는 향신료나 약재로 많이 쓰인 백합과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글로 ‘파’라고 한다. 한반도 전역에서 생산되어 각종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쓰였다. 생파는 물김치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파뿌리는 약재로 쓰이기도 했다. 총과병(蔥瓜餠)·총시탕(葱豉湯)·반총산(蟠葱散) 등의 약재 재료로 쓰였다. 오신(五辛)의 하나로 여겨져 왕실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祭官)들은 먹지 않았으며, 상(喪)을 당한 부인이나 자녀도 먹지 않았다. 내관(內官)은 냄새 때문에 먹지 못하도록 했다.

원산지 및 유통

파의 원산지는 중국 서부와 중앙아시아이다. 재배되는 시기에 따라 여름파, 겨울파, 겸용파로 나뉜다. 한반도에는 전역에서 생산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여러 가지 용도로 파가 필요했지만, 말라 버리는 문제가 있어 왕실과 거리가 가까운 경기도에서 파를 봉진(封進)하도록 지시하였다(『연산군일기』 11년 3월 25일).

연원 및 용도

세조 때의 어의(御醫)였던 전순의(全循義)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생파로 담근 총침채(葱沉菜)의 조리법이 나온다. “5~6월에 생파를 뿌리와 겉껍질을 없애지 말고 깨끗이 씻어서 물기가 없도록 잠시 말린다. 파 한 벌에 소금 한 켜씩 켜켜로 번갈아 깔아 다발을 만들어 항아리에 담고 맑은 물을 가득 붓는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부어 매일 이렇게 물이 맑아질 때까지 바꾸어 주는데, 5~6월에 담가 두면 겨울이 지나도록 쓸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 “파를 깨끗이 씻어서 적당히 소금으로 버무려서 나무통에 담고, 2일을 두어 소금기가 다 배어들면 항아리를 볕이 드는 곳에 놓는다. 파는 다발로 만들어 넣는데 지저분한 것이 없는 것으로 꼭꼭 눌러 놓는다.”고 했다. 김유(金綏)가 지은 『수운잡방(需雲雜方)』에도 총침채 만드는 법이 나온다. 그 내용은 『산가요록』의 첫 번째 방법과 같다.

파는 오신채의 하나로 쓰여 상(喪)을 당한 상주(喪主)는 먹지 않았다. 단종 때 한을생(韓乙生)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 15년 동안 파를 먹지 않아서 열녀가 되었다(『단종실록』 3년 2월 29일). 심지어 왕실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들은 제향 전에 파를 먹지 않아야 했다(『세조실록』 3년 1월 15일).

파는 약재로도 쓰였다. 영조는 배앓이를 자주 했는데, 이때 파를 따뜻하게 하여 배에 붙였다(『영조실록』 37년 3월 27일). 총과병·총시탕·반총산 등의 약재 재료로 쓰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의하면, 반총산은 창출(蒼朮)·감초·삼릉(三稜)·봉아출(蓬莪朮)·백복령(白茯苓)·청피(靑皮)·사인(砂仁)·정향피(丁香皮)·빈랑(檳榔)·연호색(延胡索)·육계(肉桂)·건강(乾薑)과 함께 파를 넣어 만든다.

내관은 냄새 때문에 파를 먹지 못했다. 그런데 명종 때 내관 강억천(姜億千)이 지키지 않아서 귀양을 갔다(『명종실록』 18년 8월 18일). 시체를 검안할 때 목을 맨 흔적을 찾는 데도 파가 사용되었다(『숙종실록』 36년 12월 19일).

참고문헌

  • 『동의보감(東醫寶鑑)』
  • 『산가요록(山家要錄)』
  • 『수운잡방(需雲雜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