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구타조장(頭具打造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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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기감(軍器監)에 소속되어 투구를 만든 장인.

개설

투구를 제작하는 공장(工匠)은 두구장(頭口匠), 모장(牟匠)이라고도 하였다. 두구타조장(頭具打造匠)은 두구장 중에서도 두구의 철판을 두르려 형태를 만든[打造] 장인을 의미한다.

담당 직무

조선초기의 투구는 철로 만들며 머리가 들어가는 부분만 있는 원주(圓胄)와 아래쪽에 차양이 달린 첨주(簷胄)의 2가지로 나뉜다[『세종실록』 오례 군례 서례 병기]. 투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둥근 삼각형 철판을 머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곡률로 구부려야 하고, 이러한 철판 4장을 연결하여 반구형(半球形)을 완성한다. 다음으로 정수리 부분에는 투구꼭지[頂子]와 붉은색 상모(象毛)를 달고, 양옆 아래쪽에 구름모양 장식[雲月兒]을 달아주었다. 두구타조장은 제작 단계의 앞부분인 철판을 두드려서 투구의 곡률대로 구부리는 작업을 담당하였다.

변천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군기감에는 투구를 만들기 위해 모장 2명이 배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장인이 줄어들어 두구장식장과 두구타조장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1434년(세종 16)에 병조와 군기감의 건의로 부족한 공장 인원을 보충하면서 두구장식장 16명과 두구타조장 20명을 다시 배정하였다(『세종실록』 16년 6월 11일).

조선후기로 오면서 투구의 재질에 변화가 생겨서 철 대신 종이나 가죽에 검정 칠(漆)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두구타조장의 역할은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악학궤범(樂學軌範)』
  • 『어영청구식례(御營廳舊式例)』
  •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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