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첩장(褙貼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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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공조(工曹)상의원(尙衣院)에 소속되어 궁궐에 도배를 하거나 책자나 서화에 배접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장인.

개설

배첩장(褙貼匠)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공조에 2인, 상의원에 4인, 도화서(圖畵署)에 2인을 두었다. 이를 통해 공조의 배첩장은 건물의 도배를 하였고, 상의원의 배첩장은 교명(敎命)의 장황을 하였으며, 도화서의 배첩장은 서화를 보호하기 위해 족자나 병풍을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배첩장은 꾸미고 완성하는 물품에 따라 각각 다르게 부르기도 하였다. 건물에 도배를 할 때에는 장흥고나 공조 및 상의원의 도배장(塗褙匠)으로, 어진을 비롯한 서화의 뒷면을 배접하거나 족자(簇子)를 꾸밀 때에는 도화서의 배첩장으로, 왕비나 세자빈을 책봉할 때 내리는 교명의 가장자리를 꾸밀 때에는 회장장(繪粧匠, 回粧匠)으로, 병풍을 만들 때에는 병풍장(屛風匠)으로, 책자를 만들 때에는 교서관의 장책장(粧冊匠)·책장(冊匠)으로 부른 것이다. 배첩장의 경우 조선초기부터 계속 사용된 호칭이지만 18세기 중반 이후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한말에 다시 등장하였다.

담당 직무

궁궐 건물의 도배를 하거나 서책이나 서화를 꾸미는 배첩은 장황(粧潢, 粧䌙, 裝潢, 裝䌙)·표구(表具)·회장(繪粧)·장배(粧褙) 등 비슷한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배첩장의 직무는 서책이나 서화를 책자나 족자 및 병풍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첫째, 배첩장은 공조에 2명, 상의원에 4명을 두었다. 이들은 장흥고의 도배장과 마찬가지로 궁궐이나 왕릉 건물 내부에 벽지를 도배하는 일을 하였다. 배첩은 종이·헝겊·얇은 널조각 등을 여러 겹으로 포개어 붙여 건물의 내부 벽을 붙이는 것이다.

둘째, 도화서의 배첩장 2명은 각종 서화를 표구하는 일을 하였다. 특히 조선초기부터 궁궐 내부에 인소전·문소전 등의 진전을 두어 왕이나 왕비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는데 배첩장은 어진을 표구하는 일을 했다.

셋째, 장흥고에는 도배장 8명이 소속되어 궁궐 내 전각 내부를 도배하는 일을 하였다. 즉 종이로 벽·반자·장지 등을 바르는 일을 하였다.

넷째, 회장장은 교명 등의 가장자리 회장(回粧)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다섯째, 책장·장책장은 서책이나 서화를 만드는 일을 하였다. 조선후기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편찬 사업은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이었다. 이를 위해 책장은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찬수청(實錄纂修廳)이나 『선원록』을 수정하는 교정청(校正廳)에 징발되어 도감역을 수행하였다.

여섯째, 병풍장은 서화를 배첩하여 병풍으로 만드는 일을 하였다.

변천

장황은 가장 이른 사례가 1398년에 보이고(『태조실록』 7년 12월 17일) 장황이란 용어의 사용은 『세종실록』부터 보이기 시작하였다(『세종실록』 27년 4월 5일).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배첩을 하는 배첩장은 공조에 2명, 상의원에 4명, 도화서에 2명을 두었다. 배첩장의 경우 조선초기부터 계속 사용된 호칭이지만 18세기 중반 이후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한말에 다시 등장하였다.

배첩장은 건물을 수리할 때 도배군(塗褙軍)을 관리하고 주도하였던 장인이었다. 1628년(인조 6) 창덕궁 집경전(集慶殿)을 수리할 때 전각에 벽지를 발랐던 배첩장 김길(金吉)은 사역하여 금군(禁軍)을 제수받았고, 함께 활동한 김덕남(金德男)은 면천하도록 하였다(『인조실록』 6년 10월 3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장경희, 『의궤 속 조선의 장인』, 솔과학, 2013.
  • 이진희, 「조선시대 장황 용어와 관련 기록」, 『장서각』 제23집, 2010.
  • 장경희, 「조선후기 산릉도감의 장인 연구」, 『역사민속학』 25호, 2007.
  • 장경희, 「조선후기 왕릉 정자각 내부 의물 연구」, 『역사민속학』 33호, 2010.
  • 조흥윤, 「한국장황사료(1) 영정모사도감의궤」, 『동방학지』 제57집,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