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供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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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행사를 위해 기물을 준비하고 장막을 치는 일.

② 연회나 행사 때 사용되는 장막이나 휘장, 혹은 연회 준비 및 연회 자체.

개설

조선시대 중기의 학자 조호익(曺好益)이 지은 『가례고증(家禮考證)』에 따르면 공장(供帳)이란 기물을 펼쳐놓는 일을 말하는데, 이때 ‘장(帳)’은 침상, 자리, 의자, 탁자 따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공장은 연회 등의 행사를 위해 기물을 준비하고 장막을 치는 일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장은 좁게는 행사 때 사용되는 휘장이나 장막 등을 의미하는 말로, 넓게는 행사를 위해 기물을 준비하고 펼치는 일, 나아가 그로 말미암아 생성된 편의 시설이나 연회 자체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공장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한서』「장연수전(張延壽傳)」이다. 여기에는 왕이 장연수를 위해 공장을 베풀고, 저택을 하사하여 가마와 복식으로 채우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공장은 연회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후에 공장과 관련된 기록이 등장한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998년(고려 목종 1)에 전시과(田柴科)를 개정하면서 선휘사(宣徽使)라는 관직을 두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선휘사를 두어, 천자의 도성 밖 제사 의식인 교사(郊祀) 및 조회, 연향, 공장의 의식을 총괄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고려의 선휘사 또한 이와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동국통감(東國通鑑)』에 따르면, 1115년(고려 예종 10)에 송나라로 들어가는 사신 일행을 전송할 때, 왕이 내관에게 명하여 공장을 융숭하게 준비해주었다고 한다. 공장이라는 용어가 이미 고려시대부터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장이라는 표현이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태종 때이다. 왕이 태상왕 즉 태조이성계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이천(麻伊川)에 나아가 공장을 갖추고 기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태종실록』 1년 4월 26일). 이후 조선시대 전기는 물론이고 고종대인 1869년(고종 6) 5월 29일 기사에 이르기까지 공장에 관한 기록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따라서 공장이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연회 혹은 연회 때 사용되는 장막이나 휘장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한서(漢書)』
  • 『동국통감(東國通鑑)』
  • 『고려사(高麗史)』
  • 『가례고증(家禮考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