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방고(敎坊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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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기의 하나.

개설

교방고(敎坊鼓)는 당악기에 속하며 팔음(八音) 중 혁부(革部)에 해당된다. 궁중의 제례와 행차에서는 연주용으로 사용되었고, 연향에서는 춤 반주악기와 춤 도구로 쓰였다. 작게 만들어 무덤에 부장하기도 하였다. 즉 제례, 연향, 행차, 장례 등의 행사에서 연주용, 의물, 부장용품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연원 및 변천

교방고는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기록이 문헌에 나타나며 당악기로 소개되어 있다. 고려시대 교방고는 조선시대로 전래되었고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세종대에는 문소전(文昭殿) 제례의 당상악(堂上樂)과 당하악(堂下樂)(『세종실록』 15년 5월 5일), 연은전(延恩殿) 제례의 전상악(殿上樂)과 전정악(殿庭樂), 소경전(昭敬殿) 제례의 전상악과 전정악, 휘덕전(輝德殿) 제례의 전상악과 전정악(『세종실록』 29년 5월 2일)에 편성되어 제례악을 연주하였다. 또한 어전예연(御前禮宴)에서 연례악을 연주하였으며(『세종실록』 16년 7월 18일), 명기(明器) 악기에 포함되어 부장되기도 하였다(『단종실록』 즉위년 9월 1일).

성종대에는 종묘 헌가(軒架)에 편성되어 종묘제례악을 연주하였다. 전부고취(前部鼓吹)와 후부고취(後部鼓吹)에도 진설되었고, 고취 악대가 이동할 때에는 4명의 악공(樂工)이 교방고를 메고 다녔다. 학무(鶴舞)·연화대무·처용무(處容舞)를 연이어 춤출 때 반주악기의 하나로 사용되었는데, 대고(大鼓) 연주자가 교방고를 겸하여 연주하였다. 무고(舞鼓) 정재에서는 춤출 때 사용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숙종대에는 영소전(永昭殿) 담제(禫祭) 뒤 음악을 연주할 때 전상악과 전정악에서 활용되었던 용례가 있다(『숙종실록』 7년 11월 6일). 조선후기와 대한제국기에는 주로 궁중연향에서 사용되어 순조·헌종·고종대의 연향 의궤에 그림과 연주자들의 이름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형태

교방고는 두 종류의 형태가 있는데, 용[蟠龍]이 그려진 북통을 악기틀에 올려놓은 것과 매단 것이다. 악기틀에 올린 경우는 북면이 위를 향하며 북통의 고리를 네 기둥에 걸었고, 북을 매단 경우는 북면이 옆을 향하며 북통의 위와 양옆에 설치된 3개의 고리를 악기틀에 고정시켰다. 교방고는 나무채[木槌]로 악절에 따라 장고의 북편 소리와 함께 동시에 치는 방식으로 연주하였다.

    1. 00016714_그림1_『국조오례서례』의 교방고
    1. 00016714_그림2_『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의 교방고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 『악학궤범(樂學軌範)』
  • 『종묘의궤(宗廟儀軌)』
  • 『춘관통고(春官通考)』
  •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
  •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
  •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
  •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 『고종정축진작의궤(高宗丁丑進爵儀軌)』
  • 『고종정해진작의궤(高宗丁亥進爵儀軌)』
  • 『고종임진진찬의궤(高宗壬辰進饌儀軌)』
  •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 『고종신축진찬의궤(高宗辛丑進饌儀軌)』
  •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 『대한예전(大韓禮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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