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서(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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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에 양잠에 관한 기술을 정리하여 편찬한 책.

개설

본래 『잠서』라는 책은 중국북송(北宋) 때 진관(秦觀)이 지은 책 이름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잠서』라는 책은 두 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는 태종대에 『농상집요』에서 양잠(養蠶)에 관련된 부분을 발췌하고 이를 이두로 번역하여 만든 책을 가리킨다. 당시 이행과 곽존중이 『잠서』 편찬을 맡아 수행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양잠경험촬요(養蠶經驗撮要)』가 태종대 편찬된 『잠서』로 추정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세조대에 양성지가 편찬하여 세조에게 올린 『잠서』인데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태종대에는 『농상집요』에서 양잠방(養蠶方)을 추출하여 본국(本國) 이어(俚語)로 번역하여 간행한 책이 『잠서』이다. 현재 『양잠경험촬요』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임 예문관 대제학이행이 『농상집요』 중에서 양잠방을 뽑아 낸 것을 스스로 체험하여 많은 효과를 거두게 되자 관련 내용을 추려 간행한 것이었다. 이후 국가에서 민간에서 한문을 해득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여 의정부 사인(舍人)곽존중(郭存中)에게 명령하여 본국 이어로 주석를 붙여 간행·반포하게 하였다.

태종대의 『잠서』 편찬은 『농서(農書)』 편찬과 함께 이루어졌다. 1414년(태종 14)에 우대언(右代言)한상덕(韓尙德)이 『농상집요』를 본국 이어로 번역하여 향곡(鄕谷) 소민(小民)들이 제대로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태종이 한상덕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전임(前任) 대제학이행과 검상관곽존중에게 『농상집요』를 발췌하고 본국 이어로 번역하여 책자를 만들어 간행하게 하였다. 이 책이 『농서』라는 이름으로 세종대에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농서집요』가 바로 태종대에 편찬된 『농서』로 추정된다. 이러한 편찬 과정과 편찬 태도는 앞서 『농상집요』 양잠방 초록서(抄錄書)인 『잠서』 편찬과 동일한 것이었다.

세조대에는 양성지가 주관하여 『잠서』를 편찬하였다. 이때 책 제목은 『농잠서(農蠶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459년(세조 5)에 세조는 예문관 직제학서강(徐岡), 사헌부 감찰이근(李覲)에게 『잠서주해(蠶書註解)』를 편찬하게 하였다. 이 편찬 작업은 1459년 10월 양성지가 새로 편찬한 『잠서』를 세조에게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세조는 중간에 자신이 직접 『잠서』 교정을 수행하려고 하였지만 쉽사리 할 수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이 작업은 이후 양성지에 의해 교정(校正)이 수행되었고, 결국 양성지가 1459년 10월에 『잠서』를 완성하였다. 그런데 1466년(세조 12)에 이르면 세조가 신숙주, 강희맹, 양성지 등에게 역(易), 천문(天文) 등에 관한 여러 서적을 골라 유취(類聚)하는 편찬사업을 실행하도록 명하였다. 이때 농상(農桑)도 정리 작업의 한 항목으로 들어가 있었다. 유취 편찬사업이 해당 분야에 대한 여러 책을 모아서 항목, 세목에 따라 정리하는 사업으로 생각된다는 점에서 1459년 양성지가 『잠서』를 편찬한 이후 계속해서 농상의 기술적인 부분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1466년경에 『농잠서』의 편찬이 완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남미혜, 「조선전기 양잠업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 이광린, 「『양잠경험촬요』에 대하여」, 『역사학보』28, 1965.
  • 이광린, 「『양잠경험촬요』 해제」, 『서지학』6, 1974.
  • 한영우, 「눌재 양성지의 사회·정치사상」, 『역사교육』17,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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