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웅(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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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웅직성에 든 사람이 재액을 막기 위해 짚으로 만든 인형.

개설

추령(芻靈) 혹은 체용(體俑, 제웅)이라 불리기도 한다. 추령은 처용(處容)에서 빌려 온 것이다. 처용놀이라 해서 처용희(處容戱)라 하거나 초인을 친다는 의미로 박초인(拍草人)이라 한다. 어린아이들은 크기가 작은 나무조롱[木葫蘆]으로 액을 막았다. 직성(直星) 중에 가장 꺼리는 제웅직성에 든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인 상원(上元) 전날 만들어 길에 버리면 액을 면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제웅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처용의 이름을 추령에서 빌렸던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 혹은 그 이후에 나타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직성은 먹은 나이에 따라 그의 운명을 맡아본다는 9개의 별, 즉 나후(羅睺)·토(土)·수(水)·금(金)·일(日)·화(火)·계도(計都)·월(月)·목(木)을 말한다. 남자는 열 살에 제웅직성이 들기 시작하여 열아홉 살에 다시 돌아오고 여자는 열한 살에 들기 시작한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의하면 제웅은 포악한 영웅의 별인 칠살(七殺)이라 꺼린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어린아이들은 제웅 대신 삼색의 나무조롱을 겨울 내내 차고 다니다가 상원 전날 밤에 몰래 버렸다고 한다. 또한 성인들이 정월 14일 밤에 버린 제웅을 아이들이 주워 동전만 빼 가면 그 직성을 버린 사람은 한해의 액운을 면할 수 있다고도 한다. 『완당전집(阮堂全集)』에는 아이들이 제웅직성에 든 사람의 대문 밖에서 ‘직성(直星)’ 하고 외친다고 하였다. 이때 제웅을 던져주면 아이들이 그 안의 동전을 빼 간다. 그러면 해당 직성의 사람이 액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제웅을 가지고 노는 것을 ‘처용희(處容戲)’라 불렀다. 이때 아이들이 서로 동전을 빼 가려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폐단 때문에 1781년(정조 5)에는 상원 전날 아이들이 제웅 놀이를 하지 말도록 금하였다(『정조실록』 5년 1월 17일).

형태

『동국세시기』와 『경도잡기』에 의하면, 일직성(日直星)과 월직성(月直星)을 만난 사람은 종이로 해와 달 모양을 만들어 나무에 끼워 지붕의 용마루에 꽂았고, 수직성(水直星)을 만난 사람은 종이에 밥을 싸서 밤에 우물 속에 던졌다. 제웅직성에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드는데, 짚을 이용해 사람 형상에 가까운 인형을 만들어 그 머릿속이나 뱃속에 동전을 숨기면 완성된다. 아이들은 나무조롱 세 개에 각각 청색·홍색·황색 칠을 하여 거기에 유색의 실로 끈을 만들어 차고 다녔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제웅직성을 만난 어른들은 제웅을 몰래 버리거나 혹은 문 밖에 아이들의 소리에 이것을 내어주기도 하여 액운을 막았다. 이와 달리, 직성을 만난 어린아이들은 세 가지 색상의 나무조롱을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차고 다니다가 정월 14일 밤에 몰래 길에다 버리면 액을 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참고문헌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목민심서(牧民心書)』
  • 『완당전집(阮堂全集)』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