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묵(松烟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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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먹.

개설

소나무를 태워서 만들어진 그을음을 채취하여 채로 거르고 아교와 향료를 적당히 섞어 공이로 수천 번 찧어 먹 틀에 찍어 말려 만든 먹을 말한다. 송연묵(松烟墨)은 차분하고 묵직하며 은은한 빛깔을 낸다.

연원 및 변천

지금처럼 일반적으로 쓰는 먹이 없던 시절에는 석날(石涅)이라고 하는 검정색의 광물질을 빻거나 갈아 옻[漆]과 섞어서 썼다고 한다. 위진(魏晉)시대에 비로소 옻나무 그을음과 소나무 그을음을 재료로 둥근 모양의 먹 덩어리[墨丸]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였다. 송대(宋代)조설지(晁說之)의 『묵경(墨經)』에 의하면, “예전에는 석묵(石墨)과 송연묵 2가지가 있었는데, 위진시대부터 석묵은 없어지고 송연묵을 썼다.”라고 하였다. 또 원(元)나라 도종의(陶宗儀)의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에는 “상고시대에는 먹이 없었기 때문에 대꼬챙이에 옻을 찍어 글씨를 썼고, 중고시대에는 석묵즙(石墨汁)을 사용하였는데 연안에서는 이것을 석액(石液)이라고 하였다. 위진시대에 비로소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묵환(墨丸)을 쓰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조식(曹植)의 「장가행(長歌行)」에 “먹은 청송의 그을음으로 만든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대에 이미 송연묵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상고시대에 칠(漆)로 글씨를 썼다는 기록은 오해의 소산이라고 한다. 칠서(漆書)에 관한 문헌이나 증거는 믿을 게 못 되며, 칠은 근본적으로 서사에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칠서의 의미는 옻나무 즙액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든 먹으로 쓴 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석묵은 석탄이나 흑연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석탄은 벼루에 갈아 쓸 수 없으므로 흑연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 쓴 검정색 광물질[石涅]이나 먹 덩어리는 편편한 돌 위에 올려놓고 마묵석(磨墨石)으로 갈아 썼다.

당나라 말기에 이초(李超)와 이정규(李廷珪) 부자는 소나무 그을음과 아교를 혼합해 송연묵을 만들었다. 이 먹은 결이 곱고 세밀하여 마치 칠처럼 광택이 났는데, 남당(南唐)의 후주(後主)인 이욱(李煜)으로부터 이초와 이정규 부자가 상과 벼슬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이들이 만든 송연묵은 송연 가루에 아교를 섞어 만든 혼합먹인데 이러한 제조법은 한나라 말기 위탄(韋誕)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2세기 무렵부터 이러한 방법이 창시되어 수세기에 걸쳐 실험을 거쳐 발전하여 당나라 후기에는 좋은 먹을 만들게 된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먹은 고대부터 사용한 흔적이 보이며, 신라시대에 이미 송연묵이 만들어졌다. 고려초기에는 소나무 그을음과 사슴 뼈로 만든 아교를 섞어 먹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송연묵이 매우 발달하였다. 송연묵은 붓글씨를 쓰는 데 꼭 필요한 재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초기부터 인쇄용 원료로도 널리 쓰였다(『선조실록』 6년 3월 17일)

참고문헌

  • 이겸노, 『문방사우』, 대원사, 2008.
  • 錢存訓 저, 김윤자 역, 『중국고대서사』, 동문선, 1993.
  • 梁披雲 외, 『중국서법대사전』, 서보출판사, 1985.
  • 尹潤生, 『묵림사화』, 자금성출판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