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갑(牲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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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제사에서 희생(犧牲)의 고기를 담아 제상(祭床)의 조(俎)에 올려놓는 나무 상자.

개설

국가 제사에서 희생을 제상에 올려놓을 때에는 조라는 제기(祭器)를 사용하였다. 조는 도마처럼 위가 평평한 판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조에 올릴 희생 고기는 도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뼈와 살에 피가 묻은 날고기이거나 솥에서 익혀 금방 꺼낸 수육이었다. 그러므로 피나 물에 젖은 고기를 조와 같이 평평한 판에 올려놓기에는 불편하였다. 이에 고기를 조에 직접 올리지 않고 나무로 만든 상자 모양의 그릇인 생갑에 담아서 올렸다. 이러한 생갑은 크기에 따라 대생갑(大牲匣)과 소생갑(小牲匣)을 준비하였는데 전자는 희생의 생고기를 뼈 중심으로 분리하여 놓는 데에 사용하였고, 후자는 익힌 고기를 바치는 데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대생갑은 제향 전에 제상에 진설해두는 반면 소생갑은 제향 중 희생의 삶은 고기를 드리는 궤식(饋食)의 절차 때 음식을 준비하는 막사인 찬막(饌幕)에서부터 고기를 들고 들어가 제상의 설치된 조에 올려놓았다.

연원 및 변천

생갑은 고대 경전에 나오는 제기가 아니라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희생의 고기를 조에 담는 것은 고대의 법식을 준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희생 제물을 담기에 부적절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생갑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조와 생갑은 소, 양, 돼지 등 희생의 종류에 따라 별도의 그릇을 만들었다. 또한 날고기와 익힌 고기를 따로 담았기 때문에 종묘에서 행하는 대사(大祀)인 경우 하나의 제상에는 모두 6개의 생갑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1794년(정조 18)에 정조는 대사의 궤식 때 희생별로 각각의 생갑에 고기를 담아 올리는 방식을 바꾸어 하나의 생갑에 세 가지 고기를 담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모신 경모궁(景慕宮)에서 제례(祭禮)를 행할 때도 역시 종묘의 방식을 따랐다.

형태

생갑의 모양과 크기는 『종묘의궤(宗廟儀軌)』에 처음으로 보인다. 이에 의하면 생갑은 나무로 만들고 흑칠을 하였다. 모양은 직사각형이며 뚜껑이 있다. 몸체의 좌우 짧은 면에 납염철(鑞染鐵)로 만든 손잡이가 달려 있다. 생갑은 대생갑과 소생갑이 있는데 대생갑은 길이가 2자 5치(약 76㎝)이고 폭이 1자 4치(약 42㎝), 높이가 3치 5푼(약 11㎝)이다. 소생갑은 길이가 1자 3치(약 39㎝)이고, 폭은 9치 6푼(약 29㎝)이며, 높이는 2치 7푼(약 9㎝)이다. 정조대 새로 만든 생갑은 상자 안쪽에 두 개의 칸막이를 대어 공간을 3등분하였는데 여기세 소, 양, 돼지의 수육을 담을 수 있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종묘의궤(宗廟儀軌)』
  • 국립문화재연구소, 『종묘제례』, 민속원, 2008.
  • 종묘관리소,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번역집』, 종묘관리소, 2010.
  • 이욱, 「조선후기 종묘 증축과 제향의 변화」, 『조선시대사학보』6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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