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첩(梳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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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에 진상하는 빗이나 빗솔 등을 넣어 두는 빗접의 일종.

개설

빗접이라 부르기도 한다. 애화(艾花)·짚신[靸鞋]·우산(雨傘)·절선(節扇)과 함께 단오절에 왕에게 진상한 절물(節物) 중 하나이다. 빗솔이나 빗치개 등과 같이 머리손질 용품을 넣어 두는 보관함이다. 남성용과 여성용을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것은 단오 외 궁중 길례의 진상품 중의 하나였다.

연원 및 변천

그 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단오절과 같은 절일(節日)과 왕가의 궁중의례가 있을 때 진상하던 물목 중의 하나였다. 단오에는 다른 절물들과 함께 호조(戶曹)에서 비용을 내리면 공조(工曹)에서 제작해 진상하였다. 궁중에서는 관례와 혼례와 같은 길례(吉禮)에 이것을 진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세자의 관례에 내자시(內資寺)에서 소첩을 진상한 기록이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에 나타난다.

일부 왕은 소첩을 비롯한 절목용 품목을 과하게 진상하라고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506년(연산군 12)에는 후궁과 당시 왕을 가까이서 모신 기생집단인 천과흥청(天科興淸)을 위한 절물로 소첩을 비롯한 춘번자(春幡子)와 인승목(人勝木) 등을 그 수량에 구애받지 말고 진상하라 명하기도 하였다(『연산군일기』 12년 1월 7일). 이후 1757년(영조 33)에는 단오의 소첩 진상을 중지할 것을 명하였는데(『영조실록』 33년 12월 16일), 그 이후 소첩은 절물의 품목에서 사라진 듯하다.

형태

소첩은 기름에 결은 종이로 만든 물건이다. 머리손질 도구를 끼워 두는 것으로 거울이 따로 부착되어 있지 않아, 소첩을 사용할 때는 거울을 따로 갖춰서 사용한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소함(梳函)이 있다. 소함은 상자 모양이며 거울이 부착되어 있다.

소첩 중 겉면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은 화소첩(畵梳貼)이라 했고, 남성용은 남소첩(男梳貼)이라 불렸다. 화소첩의 가격이 다른 소첩보다 조금 더 비쌌던 것으로 보인다.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소첩의 가격은 2냥에서 4냥까지 다양하였다.

생활·민속 관련사항

소첩은 혼수 품목 중의 하나였다. 혼수품 중 함께 구비되는 것으로 장함(藏函)이 있다. 장함이 화장용품을 넣어 두는 상자라면 소첩은 머리손질 용품만을 담아 두는 함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 『만기요람(萬機要覽)』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