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청소완자(純靑小碗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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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이 없는 청자 완 또는 청색 유약을 입힌 청자 완.

개설

조선초기에는 명나라 황제의 하사품과 사신의 진상품으로 다양한 종류의 중국 자기가 조선에 유입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명대 자기의 유입은 15세기 초 세종 연간에 집중되었다. 특히 명나라 선덕제(宣德帝)는 세종에게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자기를 하사하였고 그 내용은 칙서에 기록되었다. 문종 연간에도 명나라 사신들의 진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중국 자기가 유입되었다. 순청소완자(純靑小碗子)도 중국에서 유입된 자기 가운데 하나로, 문양을 장식하지 않고 청색의 유약을 입힌 중국 절강성 용천요산 청자이거나 이를 모방하여 강서성 경덕진요에서 만든 방용천청유자기(倣龍泉靑釉磁器)일 가능성이 있다.

연원 및 변천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연간부터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을 여러 차례 왕래한 윤봉(尹鳳)과 정선(鄭善)이 문종을 비롯하여 내궁(內宮)과 세자에게 진상한 다양한 종류의 중국산 자기가 기록되어 있다. 자기의 종류와 수량은 청화백종(靑畫白鍾) 5사(事), 자색종(紫色鍾) 6사, 화완자(畫碗子) 10사, 순청주주(純靑酒注) 1사, 대접(大楪)·중접(中楪)·소접(小楪) 60사, 청화사반(靑畫沙盤) 9사, 청화대잔(靑畫臺盞) 1사, 순청종(純靑鍾) 6사, 자접(紫楪) 27사, 화다종(花茶鍾) 6사, 청묘금주주(靑苗金酒注) 1파(把), 청화백제완(靑畫白堤碗) 10사, 청화다종(靑畫茶鍾) 6사, 순청소완자 10사가 그것이다(『문종실록』 즉위년 8월 6일).

이 중 자기의 종류를 의미하는 ‘순청(純靑)’은 문양을 장식하지 않고 청색의 유약을 입힌 중국 절강성 용천요산 청자이거나 이를 모방하여 강서성 경덕진요에서 만든 방용천청유자기일 가능성이 있다. 용천요 청자는 명나라 초기인 1393년(명 홍무 26)에 황실용 어기(御器)로 공급되었다는 기록이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있다. 완자(碗子)는 완(碗)을 의미하며 『조선왕조실록』의 여러 기사에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완·자완(磁椀)·다완(茶椀)으로 기록된 것과 동일한 기종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작고 큰 것이 있어서 작은 것은 소완자(小碗子), 큰 것은 대완(大碗)으로 구분하였다(『성종실록』 5년 12월 24일). 자기 외에 금속제 완자는 동완(銅碗), 은완(銀碗) 등이 있었다(『세종실록』 13년 8월 23일), (『순종실록부록』 5년 9월 8일).

형태

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진 형태로 발(鉢), 잔(盞)과 전체 형태가 비슷하다. 하지만 크기에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 陸錫興 主編, 『中國古代器物大詞典-器皿』, 河北敎育出版社, 2001.
  • 浙江省考古硏究所·北京大學考古文博學院, 『楓洞岩窯址』, 文物出版社, 2008.
  • 이현정, 「15~16세기 朝鮮 白磁에 보이는 明代 磁器의 影響」, 『美術史學硏究』 제270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 저우샤오펑[周曉峰], 「용천요 청자문화 총론」, 『차와 도자의 만남』, 강진청자박물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