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화자접(暗花磁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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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음각(陰刻) 기법으로 문양을 새긴 중국 명대 자기제(磁器製) 접시.

개설

암화자접(暗花磁楪)은 문양을 얕게 음각하여 새긴 자기제 접시이다. 1432년(세종 14)에 중국 명나라 황제인 선덕제(宣德帝)의 사신으로 태감(太監)인 창성(昌盛), 윤봉(尹鳳)과 함께 조선을 방문한 감승(監丞)장정안(張定安)이 세종에게 진상하였다(『세종실록』 14년 6월 4일). 선덕제가 세종에게 요동 지역의 농경에 사용할 1만 필의 소를 마련하여 요동 시내에 가서 베와 명주로 매매할 것을 요청하였다(『세종실록』 14년 5월 29일). 이때 선덕제의 칙서를 들고 온 세 사람의 사신 중 장정안이 방문 기간 중에 세종에게 중국 경덕진에서 제작한 백자로 추정되는 암화자접을 세종에게 바쳤다.

당시 명나라 황제와 조선의 왕은 조공 체제로 맺어진 군신 관계로 두 나라 사이의 교류에서 명나라 황제가 하사하고 사신이 조선 왕에게 진상하는 형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명나라 그릇이 조선에 유입되었다. 이들 그릇의 대부분은 자기(瓷器) 또는 자기(磁器)였으며 특히 중국 강서성 경덕진에서 만든 백자와 절강성 용천요에서 만든 청자가 많았다.

연원 및 변천

암화자접은 암화 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한 자기 접시이다. 암화 기법은 문양을 얕게 음각하는 기법으로 『경덕진도록(景德鎭陶錄)』과 『음류재설자(飮流齋說瓷)』 두 기록에서 확인된다. 『경덕진도록』은 중국 청대에 남포(藍浦)가 쓴 6권의 『도록(陶錄)』을 그 제자인 정정계(鄭廷桂)가 10권으로 증보하여 개편한 책으로 황실에서 사용한 자기를 제작한 청대 어요창(御窯廠)을 중심으로 경덕진의 요업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이 책의 5권 「경덕진역대요고(景德鎭歷代窯考)」의 명대 선덕요[宣窯] 부분에 백자 찻잔의 안쪽에 극히 세밀한 용과 봉황새 문양 그리고 그릇 바닥에 관지(款識)인 ‘대명선덕년제(大明宣德年製)’를 암화 기법으로 새겼다는 내용이 있다. 『음류재설자(飮流齋說瓷)』는 19세기 청나라 때 허지형(許芝衡)이 지은 책으로 「설화회(說花繪)」 부분에 “평조는 또한 암화라고도 한다[平雕亦名暗花].”는 내용이 있다. 암화 기법은 명나라 초기에 회회청(回回靑)인 산화코발트로 그림을 그리는 청화(靑畵) 기법과 함께 백자의 장식 기법으로 유행하였다.

형태

접시는 발·대접·완 등에 비해 높이가 낮고 입지름[口徑]이 넓어 납작하다. 안쪽 바닥이 평평하거나 오목한 두 종류가 있다. 조선초기인 15세기에 자기로 만든 접시의 구체적인 형태는 『세종실록』「오례」 흉례서례 명기에 있는 시접(匙楪)·찬접(饌楪)·소채포해접(蔬菜脯醢楪)의 그림을 참고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경덕진도록(景德鎭陶錄)』
  • 『음류재설자(飮流齋說瓷)』
  • 藍浦 原著·鄭廷桂 補輯, 林相烈 역주, 『역주 경덕진도록』, 일지사, 2004.
  • 陸錫興 主編, 『中國古代器物大詞典-器皿』, 河北敎育出版社, 2001.
  • 이현정, 「15~16세기 朝鮮 白磁에 보이는 明代 磁器의 影響」, 『美術史學硏究』 제270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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