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晋州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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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 일대에 있는 성곽.

개설

본시 토성이던 것을 1379년(고려 우왕 5)에 왜구의 침입 등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주목사김중광(金仲光)의 지휘 아래 석축으로 축조했다. 남강을 끼고 있는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4㎞ 정도이다. 촉석성(矗石城), 진주읍성(晋州邑城)이라고도 불린다. 촉석성이라는 이름은 하륜(河崙)이 지은 촉석루 기문에 ‘촉석루’라는 글자가 나오므로, 촉석성이 촉석루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고려사』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촉석성’이란 표현이 보이지 않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으로 ‘촉석성’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변천 및 현황

『대동지지』에는 1377년(고려 우왕 3) 촉석산성을 토축성으로 고쳐 돌로 쌓았는데, 주위를 800보로 하며 3개의 문을 설치하고 촉석성이라 칭했다는 내용의 기록이 확인된다. 또한 하륜이 지은 진주성 성문기(城門記)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이미 성터가 허물어져 있었고, 1377년 가을에 조정에서 변방 방비를 위해 성을 수리하면서 옛터에다 흙으로 쌓았지만 곧 무너졌다고 한 기록 등이 확인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으로 진주성과 관련된 기록이 확인되는 것은 문종대이다. 당시 충청·전라·경상도도체찰사 정분(鄭苯)은 경상도·충청도 각 고을의 성자(城子)가 법식(法式)에 따라 축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분은 성자를 그대로 둘 수 있는 고을과 급하게 개축(改築)해야 할 고을, 후일에 축조할 수 있는 고을, 물려서 쌓을 고을들을 정리해서 보고했다. 이때 정분은 진주 촉석(矗石)에 성터가 3천 척이었는데 여기에 2천 척을 더했다는 내용을 보고했다(『문종실록』 1년 9월 5일).

1591년(선조 24)에는 영·호남의 읍성을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는데, 경상도관찰사김수가 옛 성이 좁다고 하면서 동쪽을 넓혀 외성을 설치해두었다. 1593년 이후에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이수일(李守一)이 진영을 촉석성으로 옮기고, 김수가 쌓은 성이 너무 넓어 지키기 어렵다고 하면서 성안에 여러 시설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1896년(건양 1)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 성내에는 촉석루와 창열사, 의기사, 북장대·서장대, 영남포정사,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 촉석문, 공북문, 호국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진주성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사건 및 일화는 임진왜란 당시 있었던 진주성대첩이다. 1592년 11월 7일 왜군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주성을 공격했다. 진주목사김시민은 단지 3,800여 명의 병력과 백성들을 지휘하여 열 배 가까이 많은 대군에 맞서 싸웠다. 당시 곽재우(郭再祐)가 이끄는 의병부대가 성 밖에서 유격 활동을 통해 왜군을 혼란시키고 있었고, 임계영(任啓英)과 최경회(崔慶會)가 이끄는 전라도 의병 2천여 명이 왜군의 후방을 기습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왜군은 11월 13일 진주성에서 패퇴했다. 하지만 진주목사김시민은 전투 중 날아온 왜군의 총탄에 맞아 향년 3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제1차 진주성 전투가 바로 진주성대첩이다. 한산대첩,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삼대대첩의 하나로 평가된다.

다음 해 1593년 왜군은 10만에 달하는 대군을 집중시켜 함안, 반성, 의령 등을 차례로 점령하고 진주성을 대규모로 공격했다. 당시 진주성에는 수천의 병력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주변 지역의 의병장들이 최대한 병력을 이끌고 와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했지만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고 김천일과 최경회를 비롯한 장수들도 대부분 전사했다. 하지만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시켰음에도 조선군의 선전으로 상당한 손실을 입어 전라도 진출 계획이 좌절되었다.

참고문헌

  •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 『고려사(高麗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 「진주성도(晋州城圖)」
  • 김준형, 「조선시대 晉州城의 기능과 성내 시설의 변화」, 『조선시대사학보』65, 조선시대사학회, 2013.
  • 지승종, 「16세기말 晋州城戰鬪의 배경과 전투상황에 관한 연구」, 『慶南文化硏究』17,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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