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곡제(卒哭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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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虞祭) 뒤의 첫 강일(剛日)에 지내는 제사.

내용

졸곡은 ‘곡을 그친다.’는 말이다. 이때부터 조석의 사이에 슬픔이 이르러도 곡을 하지 않으며, 아침과 저녁으로만 하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초종(初終) 이래로 슬픔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졸곡제는 상제(喪祭)에서 길제(吉祭)로 바뀌는 분기점으로서의 의미가 컸다. 따라서 이를 기준으로 여러 제도가 만들어졌다.

사대부가 삼우제(三虞祭) 뒤 졸곡제를 지내는 반면 왕은 칠우제(七虞祭) 뒤에 졸곡제를 행하였다. 제사 절차는 우제와 거의 같다. 다만, 축판(祝版)의 위치와 독축(讀祝) 자리의 차이가 있다. 축판은 영좌(靈座)의 왼쪽에 올리던 것이 오른쪽으로 바뀌며, 축문을 읽는 위치도 대축(大祝)이 영좌의 왼쪽으로 가서 서향하던 것을 오른쪽으로 가서 동향하는 것으로 바뀐다.

졸곡제는 상복을 입은 자들이 점차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전환점이요 출발점으로서의 상례 절차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졸곡제 뒤에 왕은 익선관(翼善冠)에 백포(白袍)·흑각대(黑角帶)·백피화(白皮靴)를 착용하고, 백관(百官)은 백의(白衣)에 오모(烏帽)·각대(角帶)를 착용하였으며, 군사들도 변복(變服)하였다.

용례

禮曹啓 元敬王太后卒哭祭祝 稱哀子 今考儀禮經傳通解續云 祭稱孝子孝孫 喪稱哀子哀孫 注云 祭 吉祭也 謂自卒哭以後祭也 吉則 申孝子心 故稱孝 喪謂自虞以前祭也 哀痛未申 所以稱哀 卒哭以後祭祝 皆稱孝子 從之(『세종실록』 4년 9월 17일)

참고문헌

  • 임민혁 옮김, 『주자가례』, 예문서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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