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빙사한(開氷司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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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창고를 처음 열 때 추위를 관장하는 사한신(司寒神)에게 지내는 제사.

개설

사한제(司寒祭)의 일종으로 개빙제(開氷祭)·기한제(祈寒祭)·동빙제(凍氷祭)라 불리기도 한다. 24절기 중 4번째 절기인 춘분(春分)에 지낸다. 춘분은 양력으로는 3월 21일 무렵이며, 음력으로는 2월경이다. 개빙제와 반대로 맹동(孟冬), 즉 음력 시월에 얼음을 보관하면서 지내는 제사는 장빙제(藏氷祭) 혹은 사한장빙제라 한다. 장빙제 또한 사한제의 일종이다.

연원 및 변천

사한제는 고려시대 때부터 지내던 제사로, 『고려사』에 의하면 사한(司寒)을 위한 제사는 맹동과 입춘에 얼음을 저장하거나 얼음 창고를 열 때 지냈다고 한다. 사한은 추위를 관장하는 북방신으로 현명씨(玄冥氏)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개빙사한은 국가에서 명절이나 절기에 지내는 제사인 절제(節祭)로서 소사(小祀)의 하나였다. 조선시대 사한제는 겨울이 너무 따뜻하거나 눈이 오지 않을 때에도 택일해 지내기도 하였다. 1769년(영조 45)에 겨울인데도 날이 따뜻해 얼음이 얼지 않아 왕이 이를 근심하여 사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영조실록』 45년 12월 8일). 정기적으로 맹동의 장빙제와 춘분의 개빙제 외에도 기후에 따라 겨울에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개빙사한제를 행하기 위해 왕은 그 전날부터 근신하고 삼갔으며, 1778년(정조 2) 정조는 미리 묘우나 능침 혹은 사당을 보살피게[奉審] 하고, 혹여 부정이 있는지를 살피게 하였다.

절차 및 내용

『고려사』에 의하면, 개빙사한제에는 단상의 북쪽에 제상을 남향으로 설치하였으며 돼지 1두(頭)를 희생으로 썼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한현명(司寒玄冥)의 신은 빙실(氷室)에서 제향하였으며, 축문에는 모두 ‘현명씨(玄冥氏)’라고 썼다. 『동문선』에 실린 이규보의 개빙사한제 축문에는 사한제 의식의 절차와 의례 목적이 잘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얼음 창고 문을 열기 전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복숭아나무 활에 가시화살을 빙실의 호내(戶內) 오른쪽에 세워 두는데, 이 활과 화살은 제사가 끝나도 그대로 둔다. 신을 위한 제물로는 봄에 나는 마름[蘋]과 다북쑥[蘩]을 올려 흠향케 하였다. 이를 통해 한 해 얼음 창고가 안녕하기를 기원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동문선(東文選)』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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