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시(延祥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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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로움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송축시.

개설

신년시(新年詩)라 불리기도 하며, 문관들이 왕에게 바치는 송축시(頌祝詩)이다. 대개 동지 무렵에 지어 바친다. 이것은 기둥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체자[帖子]로 만들어져 궁중 곳곳에 붙여진다. 대개 춘첩자(春帖子)는 이것으로 만들어진다.

연원 및 변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승정원에서 미리 뽑은 시종신(侍從臣)과 당하(堂下)의 문관들에게 연상시를 지어 올리게 하여, 궁 안의 기둥이나 문설주에 춘첩(春帖)을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연상시를 짓기 위해 뽑힌 하급 문관들은 제술관(製述官)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성적이 우수한 이에게는 시상을 하였다. 1529년(중종 24)에는 연상시에서 으뜸을 차지한 설서(說書) 김수성(金遂性)에게 별조궁(別造弓)이라는 활 1장(張)을 시상하였으며(『중종실록』 24년 12월 22일),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783년(정조 7) 거수(居首)인 부사과(副司果)임제원(林濟遠)에게는 직모(織毛)와 말안장 1부(部)를 수여하였다.

연상시는 국상(國喪)과 같은 흉례가 있을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중지하였다. 그 예로 1408년(태종 8)에 상중이라는 이유로 신년[正朝]을 축하하는 전문과 함께 연상시도 정지한 일이 있다(『태종실록』 8년 12월 20일).

절차 및 내용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 그리고 규장각(奎章閣)의 제학(提學)에게 운(韻)을 내면, 미리 뽑힌 제술관들이 오언(五言)과 칠언(七言)의 율시나 절구를 지었으며, 이 중 채점해 성적이 우수한 것은 춘첩자로 만들어졌다. 연상시는 입춘에 대궐 안의 기둥이나 문설주에 붙였는데, 연상시를 첩(帖)으로 만들어 붙이는 일은 관상감(觀象監)에서 관리하였다. 연상시를 첩으로 만들기 위해 첩 상단에 연잎을, 아래에는 연꽃을, 가운데에 연상시를 필사해 넣었다.

연상시를 짓는 목적은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앞으로 성장 가능한 하급 문신들의 학문 활동을 권장하는 의미도 담겨져 있었다. 이는 1493년(성종 24)에 성종이 문신을 궐의 뜰에 모이게 하여 연상시를 지어 체자를 만들게 하면서 장차 문신을 독려하고 장려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성종실록』 24년 12월 25일).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민간에서도 궁중의 주련을 본떠 신년에 상서로움을 기원하는 글귀를 적어 기둥이나 문설주에 붙였다. 대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보다 구체적인 기원 내용을 적어 붙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목은집(牧隱集)』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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