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1502-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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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정보 | |
|---|---|
| 대표표제 | 박문수 |
| 한글표제 | 박문수 |
| 한자표제 | 朴文秀 |
| 분야 | 정치·행정가/관료/문신 |
| 유형 | 인물 |
| 지역 | 한국 |
| 시대 | 조선 중기 |
| 왕대 | 중종~명종 |
| 집필자 | 박은화 |
| 자 | 이실(而實) |
| 출신 | 양반 |
| 성별 | 남자 |
| 출생 | 1502년(연산군 8) |
| 사망 | 1592년(선조 25) |
| 본관 | 밀양(密陽) |
| 주거지 | 충청도 공주(公州) |
| 증조부 | 박숙노(朴叔老) |
| 조부 | 박형근(朴亨根) |
| 부 | 박감(朴堪) |
| 처_장인 | 박씨(朴氏): 박언범(朴彦範)의 딸 |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 박문수(朴文秀) | |
총론
[1502년(연산군 8)~1592년(선조 25) = 91세]. 조선 중기 중종~명종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돈녕부(敦寧府)도정(都正)이다. 자는 이실(而實)이고, 본관은 밀양(密陽)인데 아버지는 박감(朴堪)이다. 부인 박씨(朴氏)는 박언범(朴彦範)의 딸이다.
중종~명종 시대 활동
박문수는 1528년(중종 23) 사마시(司馬試)에 진사(進仕)로 합격하였다. 1538년(중종 33) 성균관(成均館)진사(進士)로서 사찰을 철폐하고 승려에게 발급한 호패(號牌)를 환수할 것을 청하는 소를 네 번이나 올렸다. 1546년(명종 1)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1555년(명종 10년) 7월 사간원(司諫院) 헌납(憲納)이 되었다가 그 뒤 돈녕부 도정이 되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