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하(李潤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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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57년(영조 33)~1793년(정조 17) = 37세]. 조선 후기 정조(正祖) 때의 천주교도.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거주지는 서울이다. 조선 중기 실학자인 이수광(李睟光)의 8대손이다.

정조 시대 활동

서울 양반가 출신인 이윤하(李潤夏)는 일찍부터 이익(李瀷)의 학문을 이어받아 공부하였으며, 매부였던 권일신(權日身)권철신(權哲身)을 비롯하여 이승훈(李承薰) 등과 함께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고 입교하였다. 1785년(정조 9) 형조에서 서울 명례동에서 천주교도들이 비밀리에 가진 모임을 적발한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 발생했을 때 처남 권일신 등과 함께 형조에 압수된 성물을 찾아오기도 하며 꾸준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791년(정조 15) 전라도 진산에서 천주교도인 윤지충(尹持忠)권상연(權尙然)이 어머니의 제사를 폐한 <진산사건(珍山事件)>이 발발하였다. 이 사건이 한양에까지 알려지게 되면서 천주교도들을 색출하여 처벌하자는 요구가 많아졌는데, 이윤하도 이때 그들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었다.(『정조실록』 15년 11월 6일),[『승정원일기』정조 15년 11월 6일] 그러나 다행히 이때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1793년(정조 17) 사망하였는데, 당시 나이 37세였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사학징의(邪學懲義)』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9,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