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빈(金漢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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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64년(영조 40)~1801년(순조 1) = 38세]. 조선 후기 정조(正祖)~순조(純祖) 때의 천주교도로, <신유박해(辛酉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베드로.

정조~순조 시대 활동

김한빈(金漢彬)은 1764년(영조 40)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으며, 홍주(현 충청남도 홍성)로 이주하여 포수(砲手) 생활을 하였다. 1800년(순조 즉위년) 서울로 올라와서 정약종(丁若鍾)의 집에서 행랑살이를 하며 그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이듬해인 1801년(순조 1) 어린 순조(純祖)를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던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규정하고, 천주교에 대한 금압령을 내리면서 천주교도들을 탄압하는 신유박해가 시작되었다.(『순조실록(純祖實錄)』 1년 1월 10일) 이때 김한빈 또한 그해 6월 2일 체포되었으나 곧 탈출하였다.

이후 그는 황사영(黃嗣永)과 황심(黃沁)을 만나 충청도 제천의 배론을 터전 삼아 비밀리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신유박해의 실상을 파악하여 황사영에게 전달하였고, 이것은 황사영이 『백서(帛書)』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김한빈은 황사영과 함께 9월 29일 배론에서 체포되었고, 여러 차례의 심문과 형벌을 받은 후 황사영이 『백서』를 작성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돕고 숨겨준 죄로 그해 10월 23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사망하였다.(『순조실록』 1년 10월 23일) 당시 그의 나이 38세였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이기경, 『벽위편(闢衛編)』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2,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