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유일(尹有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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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760년(영조 36)~1795년(정조 19) = 36세]. 조선 후기 정조(正祖) 때의 천주교도로, <을묘박해(乙卯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본관은 파평(坡州)이고, 거주지는 경기도 양근이며, 아버지는 윤장(尹鏘)이다.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순교한 윤운혜(尹雲惠)와 사촌이다.

정조 시대 활동

1760년(영조 36) 경기도 여주 점들(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금사리)에서 태어난 윤유일(尹有一)은 이웃에 있는 양근 한강개(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로 이사하였다. 이후 같은 지역에 거주하며 서학(西學) 공부를 하고 있던 권철신(權哲身)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닦던 중 서적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권철신의 동생인 권일신(權日身)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한 윤유일은 가족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1789년(정조 13) 당시 조선 천주교의 지도자급 신자들은 북경(北京)에 있는 구베아(A. Gouvea) 주교에게 조선 천주교의 상황 및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궁금했던 점과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밀사를 보내기로 하였는데, 이때 윤유일이 밀사로 선발되었다. 그가 이 일의 적임자로 선발되었던 것은 그의 성격이 온순한데다가 심지가 굳고 교리에 밝았기 때문이었다. 그해 10월 윤유일은 북경으로 가는 사신 일행의 수행 상인으로 가장하여 북경에 간 후 구베아 주교 및 신부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듬해인 1790년(정조 14) 2월 라자로회의 로오(N.J. Raux) 신부로부터 조건부 세례를 받고, 같은 날 구베아 주교에게 천주교의 성사 가운데 하나로 세례 성사 다음에 받는 성사인 견진성사도 받았다.

그해 9월 윤유일은 다시 한 번 북경에 파견되어 구베아 주교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였고, 구베아 주교는 윤유일의 두 번째 방문에 대한 응답으로 마침에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듬해인 1791년(정조 15) 3월 도스 레메디오스(dos Remedios) 신부가 조선 선교사로 선발되어 윤유일이 그를 맞이하러 책문까지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후 구베아 주교는 1794년(정조 18) 말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조선에 파견하였고, 윤유일은 의주까지 마중을 나가 주문모 신부를 서울로 데려왔다.

이후 윤유일은 계속해서 북경 교회와의 연락망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주문모 신부의 입국 사실을 조선 정부에서 알게 되어 신부와 관련자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다. 결국 주문모 신부를 데려오는데 주도적인 구실을 했던 윤유일은 1795년(정조 19) 5월 지황(池璜)·최인길(崔仁吉)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혹독한 심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았다. 이에 포도대장은 이들 3명에게 사정없이 몽둥이질을 가했고, 윤유일은 그해 5월 12일 3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시신은 비밀리에 강물에 버려졌다.(『정조실록(正祖實錄)』 19년 7월 4일)

성품과 일화

윤유일의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윤유일이 포도청에 체포되었을 당시 그를 심문했던 포도청 관리들은 “죽음을 기뻐하고 곤장 맛보기를 마치 엿 맛 보듯 하며, 입을 꼭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그가 사망한 후 북경의 구베아 주교는 윤유일과 그 동료들의 순교에 대한 전말을 듣고는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공경하느냐?’는 질문에 용감히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그리스도를 모독하라고 하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참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기보다는 차라리 천 번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단언하였습니다”라고 기록하였다.[『하느님의 종 125위 약전』]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벽위편(闢衛編)』
  •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상,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9, 2006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하느님의 종 125위 약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