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견(生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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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고치에서 나온 생사(生絲)를 정련·표백하지 않고 짠 비단.

내용

생견(生絹)은 생명주(生明紬)라고도 하는데, 조선에서 보낸 방물에 대한 중국의 답례품에 상당량의 생견이 포함되어 있었다. 1408년(태종 8) 당시 생견 1필의 가치는 쌀 3석(石)에 해당되는데 이는 명나라 사신 황엄(黃儼) 등이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반승(飯僧) 비용으로 준 견(絹) 30필에 대해 채견(綵絹) 1필은 쌀 4석, 생견 1필은 쌀 3석으로 바꿔 공급해 줄 것을 요청한 것에서 알 수 있다(『태종실록』 8년 5월 4일).

중국 황제는 세종의 즉위를 인정하면서 축하 잔치에 술과 과일을 대신하는 잔치 비용으로 생견 300필과 안팎 옷감 30필 및 양 1,000마리를 하사하였다. 중국에서는 일반 폭과 폭넓은 활생견(闊生絹)도 만들었는데 문종 때 활생견 100필을, 예종 때는 500필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용례

綵絹一匹米四石 生絹一匹米三石 以供僧徒(『태종실록』 8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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