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세(朴斗世)

sillokwiki
Silma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2월 22일 (금) 01:37 판 (XML 가져오기)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총론

[1650년(효종 1)~1733년(영조 9) = 84세]. 조선 후기 숙종 때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 행직(行職)은 중추부(中樞府)지사(知事)이다. 자는 사앙(士仰)이고,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주거지는 대흥(大興)이다. 조부는 박이건(朴以健)이고, 아버지는 군수(郡守)박율(朴繘)이다. 박태세(朴泰世)·박규세(朴奎世)의 동생이다. 부인 조씨(趙氏)는 조익상(趙益湘)의 딸이다.

숙종시대의 활동

1678년(숙종 4) 사마시(司馬試)에 진사(進仕)로 합격하였다. 1682년(숙종 8) 증광시(增廣試)문과(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직(弘文館職)이 제수되었다. 1686년(숙종 12) 그가 의금부(義禁府)도사(都事)로 권대운(權大運)과 민희(閔熙)를 압송할 때 편리를 보아 주었다 하여 파직되었다. 진주목사(晉州牧使)와 울산부사(蔚山府使)를 거쳐 중추부 지사에 이르렀다. 그는 당시 남인(南人)에 속하였는데, 벼슬길이 순탄하지 못하였다.

문학 작품과 저술

박두세는 문장에 특히 능하였으며 운학(韻學)에도 매우 밝았다고 한다. 작품으로 『요로원 야화기(要路院夜話記)』가 있는데, 그 작품의 내용은 1678년(숙종 4) 과거에 실패한 선비가 귀향하던 길에 요로원(要路院)의 주막에서 양반인 체 하면서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는 인물을 상대로 주고받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당시 사회의 실정을 폭로하고, 정치제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세태를 풍자하였다. 운학에 관한 저술로 『삼운보유(三韻補遺)』와 그것을 증보한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가 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요로원 야화기(要路院夜話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