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상(李天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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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에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의 무장.

개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이천상은 흠의천총(欽依千摠)의 신분으로 수병 2,700인을 이끌고 참전했다. 노량 전투에서 공을 세워 유격(遊擊)으로 승진하였다. 1600년 10월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가계

활동 사항

정유재란 때 유격 허국위(許國威)·참장 왕원(王元)과 주파(周把)·유격 계금(季金)·심무(沈懋)·복일승(福日昇)·양천윤(楊天胤)·장양상(張良相) 등과 함께 진린(陳璘)의 지휘를 받았다. 이천상은 날래고 용맹했으며 수전(水戰)에 능하였다. 처음에는 천총(千摠)으로 나와서 노량 싸움에서 일본군 269명을 베고 사로잡혀 갔던 사람 300여 명을 귀환시켰으므로 그 공적을 인정받아 유격으로 승진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은 그가 탐욕스러우며 포악하고, 조선 사람을 몰래 싣고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뜻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라면서 비난하였다(『선조실록』 32년 윤4월 6일)(『선조실록』 32년 10월 2일).

참고문헌

  • 『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 이민웅, 「조·명 연합함대의 형성과 노량해전 경과」, 『역사학보』178, 역사학회, 200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