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상(李天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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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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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이천상 |
한글표제 | 이천상 |
한자표제 | 李天常 |
관련어 | 계금(季金), 노량해전(露粱海戰), 정유재란(丁酉再亂) |
분야 | 정치/군사·국방/전쟁 |
유형 | 인물 |
지역 | 중국 |
시대 | 명 |
왕대 | 명 |
집필자 | 한지선 |
이칭(자,호,봉작호,시호) | 자: 유경(惟經), 호: 영봉(靈峯) |
성별 | 남 |
생년/일 | ? |
몰년/일 | ? |
출신지 | 절강(浙江)소흥부(紹興府) 산음현(山陰縣)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이천상(李天常)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32년 윤4월 6일, 『선조실록』 32년 10월 2일 |
정유재란 때에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의 무장.
개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이천상은 흠의천총(欽依千摠)의 신분으로 수병 2,700인을 이끌고 참전했다. 노량 전투에서 공을 세워 유격(遊擊)으로 승진하였다. 1600년 10월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가계
활동 사항
정유재란 때 유격 허국위(許國威)·참장 왕원(王元)과 주파(周把)·유격 계금(季金)·심무(沈懋)·복일승(福日昇)·양천윤(楊天胤)·장양상(張良相) 등과 함께 진린(陳璘)의 지휘를 받았다. 이천상은 날래고 용맹했으며 수전(水戰)에 능하였다. 처음에는 천총(千摠)으로 나와서 노량 싸움에서 일본군 269명을 베고 사로잡혀 갔던 사람 300여 명을 귀환시켰으므로 그 공적을 인정받아 유격으로 승진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은 그가 탐욕스러우며 포악하고, 조선 사람을 몰래 싣고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뜻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라면서 비난하였다(『선조실록』 32년 윤4월 6일)(『선조실록』 32년 10월 2일).
참고문헌
- 『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 이민웅, 「조·명 연합함대의 형성과 노량해전 경과」, 『역사학보』178, 역사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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