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吏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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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의 구성 요소를 우리말 어순에 맞게 배열하고, 그 사이사이에 우리말 조사나 어미 등을 삽입한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

개설

이두(吏讀)는 자국어의 어순에 맞게 변형한 변격한문에다가 그 사이사이에 자국어의 조사·어미 등의 요소까지 끼워 넣은 표기법이다. 이는 한자가 자국 문자가 아닌 국가나 민족 사이에서 한문을 불완전하게 습득한 결과로, 또는 자국민끼리 좀 더 손쉽게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생겨났다. 이두는 대개 하급 관리들이 사용하였으며, 금석문(金石文)·목간(木簡)·고문서(古文書) 등에 쓰이다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에는 주로 고문서에 사용되었다.

내용 및 특징

한문이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 한문을 독해할 수 있었던 사람은 대부분 귀족 등 극소수의 지배 계급이었다. 그런데 중간 계급에 속한 하급 관리 등은 지배 계급만큼 한문을 잘할 필요는 없었으나, 문서 행정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자와 한문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을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이 한문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고, 더욱이 한반도에 살면서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굳이 완벽한 한문 문장으로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정격한문(正格漢文)에서 벗어난, 우리말의 영향을 받은 특이한 문체의 한문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것을 변체한문(變體漢文) 또는 변격한문이라고 한다. 신라시대에 두 귀족 소년이 앞으로의 공부 계획과 나라에 대한 충성의 서약을 돌에 새겨 놓은 소위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 이러한 변격한문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변격한문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 속하면서 한문과는 다른 언어 구조를 지닌 많은 민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생하였다.

고대 중국어는 이른바 고립어(孤立語)로, 명사·동사·형용사·부사 등의 어휘 요소들이 연결되어 문장이 구성될 뿐 이들 사이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조사나 어미 같은 요소들은 별로 없었다. 그에 비해 우리말을 비롯해, 중국 주변 민족들의 언어 중에는 문법 요소가 발달한 교착어가 많았다. 따라서 한문을 자국어 어순에 따라 배열할 뿐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자국어의 조사나 어미에 해당하는 요소를 끼워 넣어 문법적 관계까지 표시하면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이고, 좀 더 정밀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단계까지 나아간 표기법을 이두라고 하였다.

초기 단계의 이두에서는 우리말의 조사 및 어미와 의미 또는 기능이 비슷한 한문의 허사(虛辭)를 이용하였다. 예컨대 ‘也(야)’를 ‘이다’의 의미로 쓴다든지, ‘中(중)’을 ‘-에’의 뜻으로 사용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또 중국어에는 ‘之(지)’를 문말(文末) 어기사(語氣辭)로 쓰는 용법이 있었는데, 이를 수용하여 이두에서도 문장을 종결할 때 ‘之’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단계의 이두에서는 특정 한자가 한문 본연의 허사로 쓰인 것인지, 우리말의 문법 요소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조금 더 진전된 형태의 이두에서는 한문의 허사에 의존하지 않고, 한자의 음(音)이나 훈(訓)을 빌려서 그와 같은 음을 갖는 우리말 문법 요소를 나타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주격 조사 ‘-이’를 표기하기 위해 ‘이’의 음을 지닌 ‘伊(이)’자를 이용하기도 하고, ‘이’를 훈으로 갖는 ‘是(시)’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본문에 딸려 그 말을 덧붙여 설명하는 말인 계사(繫辭)인 ‘-이-’를 표기할 때도 대개 ‘是’자를 썼다. 대격조사 ‘-을’을 표기할 때는 주로 ‘乙(을)’자를 이용하였다. 이렇게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음을 빌려서 우리말 요소를 표기하는 데 사용하는 한자를 음차자(音借字) 또는 음가자(音假字)라고 하고, 훈을 빌려서 사용하는 한자를 훈차자(訓借字) 또는 훈가자(訓假字)라고 한다.

‘이두(吏讀)’의 ‘이(吏)’는 구실아치를 뜻하는 글자이므로, 이두라는 명칭이 붙은 것도 하급 관리들이 사용 주체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모양새가 갖추어진 이두 또는 이두문(吏讀文)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신라의 금석문과 몇몇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최근 활발히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목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이두문을 작성한 주체 중 다수는 하급 관리였을 것이다. 창고에서 물품의 출납을 담당하는 관리가 작성하는 물품 출납 대장, 백성들의 호구를 조사하고 세금 징수 내역을 기록하는 장부, 어떤 사건의 개요를 기록한 문서 등에 이두를 활발히 사용하였다.

삼국 중 고구려의 경우 자료가 부족해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기 어렵다. 신라에서는 이두가 활발히 사용되었으나, 백제에서는 그다지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백제의 금석문 등 문자 자료에서 이두의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된다. 백제는 신라에 비해 중국의 남조와 밀접히 교류하면서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지배 계급의 한문 실력도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두는 불완전한 한문 학습의 소산이라 할 수 있으므로, 한문에 대한 소양이 많이 축적되어 있을수록 그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는 한문으로 된 문헌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이두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조선 태조 때는 중국의 『대명률(大明律)』을 이두로 번역하여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를 간행하였다. 반대로 애초에 이두로 작성된 서적을 나중에 한문으로 고쳐서 간행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태조 때 편찬된 『경제육전(經濟六典)』은 원래 이두문으로 되어 있었던 듯한데, 태종 때는 여기서 이두를 제거하고 한문으로 다시 간행하였다(『태종실록』 13년 2월 30일). 또 왕이 여러 관사(官司)에 내린 명령인 교(敎)는 대개 이두로 작성되었다. 교를 모아 놓은 『각사수교(各司受敎)』에는 본래의 이두문을 그대로 실었는데, 나중에는 이를 한문으로 고쳐서 『수교집록(受敎輯錄)』으로 간행하였다.

이두가 비록 한문 습득의 난해함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이두의 발달은 한문을 우리말에 맞추어 변형시켰다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한문을 잘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이두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한문을 잘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끼리 의사소통을 할 때는 이두가 서로 더 이해하기 편하므로 이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변격한문의 출발점은 한문의 불완전한 학습에 있지만, 나중에는 한문을 잘 구사하는 사람도 의도적으로 변격한문으로 글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변천

신라에서 생겨난 이두는 고려시대에도 수용되어, 금석문이나 목간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주로 고문서에 사용되었다. 또 공문서보다는 사문서에서 더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조선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조선시대 후기로 넘어오면서 고문서는 장르에 따라 고정된 표현이 일정하게 사용되는 투식화(套式化) 경향을 보이는데, 이두 표현에서도 이러한 투식화 경향이 나타났다. 즉 이전 시기에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쓰이던 이두 표현들이 단순화·간략화되고, 동일한 요소가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한자의 훈으로 읽던 이두 표현을 음으로 읽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마지기’라고 읽던 ‘斗落只(두락지)’를 조선시대 후기에는 ‘두락지’라고 읽게 된 것이다. 그밖에 몇몇 이두 표현은 과거의 독법과는 다른, 전와(轉訛)된 독법으로 읽히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러한 이두 표현들의 독법을 한데 모아 정리한 이두 학습서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또 하급 관리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인 『유서필지(儒胥必知)』에서도 이두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런 현상은 이두를 사용하는 주체들조차도 이두 표현의 정확한 독법과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났음을 말해 준다. 이두의 쇠퇴를 반영하는 징후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남풍현, 『이두 연구』, 태학사, 2000.
  • 박성종, 『조선초기 고문서 이두문 역주』,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 소곡남풍현선생회갑기념논총간행위원회, 『국어사와 차자표기』, 태학사, 1995.
  • 이승재, 『고려시대의 이두』, 태학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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