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花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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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하삼도(下三道) 지역에서 남자 무당 또는 여자 무당의 남편에 대한 호칭.

내용

조선시대 남자 무당의 호칭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함경도·평안도 지역에서는 사(師)라고 부르고, 충청·전라·경상도 지역에서는 화랑(花郞), 양중(兩中), 낭중(郎中) 이라고 하였다.

화랑이라는 호칭의 연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서 무당들이 신라의 화랑에서 그 명칭을 차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의 관료나 유학자들은 무속을 음사로 규정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제약하였다. 특히 화랑은 풍기를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문제시 되었다.

용례

司憲府大司憲韓致亨等上疏曰 (중략) 有男人號稱花郞者 售其誣詐之術 漁取人財貨 略與女巫同 而爲術益幻 其他悖理而背道 愚弄士女 使人邪惑 敗毁禮俗者 又不可以一二數也 臣等聞 氷炭不同器 薰蕕不同室 欲臻至理 宜黜左道 今殿下 宵衣旰食 勵精圖治 恢弘大中之道 一國之人 方拭目 淸明之治 不可使妖妄之徒 混雜於京城 以汚首善之地也(『성종실록』 2년 6월 8일)

참고문헌

  • 이능화 지음, 서영대 역주, 『조선무속고』, 창비, 2008.
  • 서정범, 「화랑어(花郞語) 고(攷)」, 『한국민속학』7, 1974.
  • 조흥윤, 「화랑의 종교문화」, 『무-한국무의 역사와 현상』, 민족사, 1997.
  • 민정희, 「조선전기 무당의 호칭과 종류」, 『역사민속학』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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