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사(香林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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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88개 자복사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순천시 석현동비봉산에 있는 절.

개설

향림사(香林寺)는 도선(道詵) 국사(國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나, 고려후기의 절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태종 때 화엄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폐허화되었고, 이후 선조, 현종, 철종 때 중건 또는 중수되었다.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1994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1996년 향림사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865년(신라 경문왕 5)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절 부근에서 향기로운 차(茶)가 많이 생산되었으므로 향림사(香林寺)라 하였다고 한다. 절이 위치해 있는 곳이 풍수지리적으로 봉황이 알을 품고 있다는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을 띠고 있어 땅의 정기가 한꺼번에 모인 곳이라 한다. 그래서 지세가 강한 까닭에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 절을 짓고 불상과 탑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향림사 석탑, 마애불 등의 조형 양식을 볼 때, 신라말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며, 고려후기에 존재한 것으로 본다.

(2) 조선시대

1407년(태종 7) 12월, 순천(順天) 향림사가 화엄종의 자복사찰로 지정되었다(『태종실록』 7년 12월 2일). 당시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는 이전 11개(혹은 12개)에서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 시흥종(始興宗) 등 7개 종파로 정리되었는데, 순천 향림사는 화엄종에 소속된 자복사찰이었다. 자복사찰은 나라의 안녕과 고을의 복을 빌기 위해 지정한 사찰이었으므로, 당시 향림사가 호남 지방의 명찰(名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수광이 1618년(광해군 10)에 편찬한 『승평지(昇平誌)』 사찰조 에서 "갑신년(甲申年)에 순천 사람들이 공동으로 돈을 모아 중창하였는데 산세의 맥을 진압하기 위함"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임진왜란을 전후해 폐허화된 절을 갑신년인 1604년(선조 37)에 중창한 듯하다. 이후 1669년(현종 10)에 중건하였고, 1853년(철종 4) 지방관리, 승려, 일반 시주자 등이 함께 중수했다.

(3) 현대

1984년 2월 향림사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1994년 2월 화재로 절이 전소되었고, 1996년 향림사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복원 사업에 착수하였다. 현재 경내의 건물로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

향림사동종(香林寺銅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7호)은 1746년(영조 20) 순천선적사(善積寺)에서 제작된 범종으로 언제 향림사에 옮겨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선암사 중수비의 기록을 통해 1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 안에 소장된 범종의 크기는 높이 85㎝, 밑지름 50.5㎝, 윗지름 35㎝이고 무게는 90㎏이다.

향림사3층석탑(香林寺三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6호) 2기는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塔身部)를 형성하고 정상(頂上)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의 석탑이다. 고려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참고문헌

  • 『승평지(昇平誌)』
  • 문화재연구소 편, 『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