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회(靑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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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자 유약의 원료로 사용된 석회석을 지칭하는 말.

개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약은 납이나 재를 매용제(媒熔劑)로 이용하는데, 납을 기본으로 하는 것을 연유(鉛釉), 재를 기본으로 하는 것을 회유(灰釉)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신라시대에는 고화도 회유와 저화도 녹유(綠釉)를 사용하였으며, 이후 고려시대 청자와 조선시대 백자에는 회유를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백자의 유약은 물토, 석회석, 재가 주요 원료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세 원료의 비율과 품질에 따라 유약의 색상과 번조 온도, 균열 여부가 판가름 난 것으로 여겨진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회유에 쓰인 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의 것을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숙종 연간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1795년(정조 19)의 기록을 통해서 청회(靑灰)로 표기된 석회석도 유약의 매용제로 사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정조실록』 19년 8월 6일). 유약에서 석회석의 칼슘 성분은 유약을 잘 녹게 하며, 그 함량이 높을수록 번조 온도가 내려가는 특징이 있다.

변천

조선시대에 사용된 유약의 재료는 전기의 경우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유약 원료인 물토 즉 수을토(水乙土)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것을 재와 함께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후기부터는 물토와 재에 마그네슘 성분을 많이 함유한 활석을 섞어서 사용하였는데, 특히 색상을 내기 위해 석회석 대신에 활석이 많이 함유된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조선전기부터 17세기까지는 칼슘 성분이 높은 석회유가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며, 18세기 이후로는 칼리유로 변화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방병선, 『조선 후기 백자 연구』, 일지사, 2000.
  • 방병선,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 돌베개,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