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본(板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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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이나 나무 등으로 판면(版面)을 만들어 찍어낸 책의 총칭.

개설

판본(版本)이란 일반적으로 간인본(刊印本)의 동의어로 간주되고 있다. 본래 목판본의 준말로 썼던 것인데, 인쇄술의 발달로 서적이 목판 이외에 활자판(活字版)이나 석판(石版) 등으로 다양하게 생산되어 이들을 모두 포괄하기 위해 ‘판본’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간인본이란 용어는 ‘활자인행(活字印行)’과 같이 활자판으로 인출한 책을 비롯하여 ‘석판인출(石版印出)’과 같이 석판으로 찍어낸 책과 그 밖의 방법으로 인출한 모든 책을 뜻한다. 또한 ‘대장경인성(大藏經印成)’, ‘간경도감판인출(刊經都監板印出)’과 같이 이미 새겨진 목판에서 단순히 종이와 먹물만을 준비하여 찍어내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목판본은 어떤 저작의 내용을 판목에 새겨 찍어낸 책이다. 그 방법은 처음에 글씨를 잘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고를 출판된 모양과 같도록 정서하게 한 다음, 이를 나무판에 뒤집어 붙이고 앞면의 글자가 비치게 한 뒤 능숙한 각수로 하여금 정성껏 판을 새기게 하고, 먹을 바르고 준비된 종이를 붙이고 문질러 찍어낸다. 이에 비하여 활자본은 활자를 한 글자씩, 매우 드물게는 몇 글자씩 붙여 주조, 또는 제작하여 인판에 배열하고 먹물을 칠하여 찍어낸 책이다. 이를 ‘활인본(活印本)’이라고도 한다.

목판본은 처음에 판각해 놓으면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인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판각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면서도 오직 한 문헌의 인쇄로 한정되는 단점이 있었다. 활자본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활자와 조판 기술이 갖추어지면 여러 종류의 문헌을 짧은 시간에 간행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내용 및 특징

서유구(徐有榘)가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이운지(怡雲志)」 권7에는 선비들의 취미 생활을 언급하면서 책을 간행할 때 목판을 다루거나 새기는 방법이 ‘도서장방(圖書藏訪)’ 항목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책을 새길 때 가장 좋은 재료는 대추나무이며, 가래나무가 그 다음을 차지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 나무를 잘라 판자(板子)를 만든 뒤 소금물에 담가 끓인 후 그늘진 곳에서 말리면 틀어지지 않고 판각하기도 쉽다고 하였다.

또 목판의 규격과 양식·서체·보관 등에 대한 언급에서, 보통 판(板)의 크기는 가로 1척, 세로 7~8촌이며, 너무 크게 만들면 재목이나 인출에 소요되는 종이가 많이 필요하게 되고, 완성 후 권질(卷帙)이 커지고 무겁게 되는 단점이 있다고 하였다. 판식(板式)은 단변(單邊)을 주로 채택하고, 각 행에는 19~20자가 배열되며, 글자체는 구양(歐陽)의 솔경(率更)을 우선하고, 『홍무정운(洪武正韻)』의 체(體)를 그다음으로 한다 하였다. 또 인쇄가 끝나면 깨끗하게 씻고 그늘진 곳에서 말린 후 나무 궤에 넣어 높은 각(閣)에 보관해야 한다고 적었다.

하나의 목판은 외형적으로 볼 때 크게 양쪽 손잡이 및 새긴 판면을 보호하는 마구리와 판면·판심으로 나눠지고, 이 목판은 다시 사용되는 용도에 따라 책판·서판·능화판·괘판·공문판·도판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중국본의 목판인 경우 좌우의 여백과 마구리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책의 간행 순서에 따라서 초간본(初刊本), 원각본(原刻本), 중각본(重刻本), 중조본(重雕本), 후쇄본(後刷本), 후각본(後刻本), 재각본(再刻本), 번각본(飜刻本), 보각본(補刻本), 체수본(遞修本), 남탑본(邋遢本), 교정본(校正本) 등의 다양한 명칭이 사용된다. 이외에 글자의 크기에 따라 대자본(大字本)·소자본(小字本), 책 크기에 따른 대형본·소형본, 시대나 판각처, 장책의 형태에 따른 일반적인 고서의 분류 명칭이 적용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최고의 목판본은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통해 불국사 중창과 석가탑 창건 시기(751년), 당 측천무후의 집권기에 제정한 무주제자의 사용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한역(漢譯) 시기(704년), 동일한 경전을 납탑 공양한 기록이 있는 황복사 삼층석탑의 장엄 시기(706년), 『다라니경』의 필법과 동일한 양식을 지니고 있는 구황리 석탑 사리함 뚜껑의 명문 작성 시기(706년) 등을 추론할 수 있는데,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에서 751년(신라 경덕왕 10) 이전에 간행된 목판 인쇄물임을 알 수 있다.

목판본은 우리나라 고인쇄 서적의 판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목판본이 생성되는 양상은 사본에서 목판본 인본으로 찍어내는 경우와, 활자본이나 목판본을 다시 목판본으로 새겨내는 경우로 크게 구분된다. 목판본을 만들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사본을 등재본(登梓本)이라고 하며, 처음으로 목판본을 새긴 것을 초각본(初刻本) 또는 초간본(初刊本)이라고 한다. 다시 목판본을 새기는 경우를 흔히 복각본(覆刻本) 또는 번각본이라 한다.

이와 같은 번각의 경우 등재본이 부정확하면 각수에 의해 여러 모양으로 각판되기 때문에 판면이 조잡하고 내용의 변모를 초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번각본은 인출 과정에서 내용을 빼버리기도 하고 멋대로 수미를 바꾸거나, 또는 내용을 증손(增損)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번각이 되풀이될수록 일반적으로 내용이 조잡하고 부정확해진다.

번각본은 이미 인쇄된 책을 해체하여 책장을 목판에 엎어 붙인 다음 그대로 새겨낸 것이므로 목판 인쇄 기술 생성 이후 그것에 수반되어 고안된 방법이다. 우리나라 번각본의 시원으로 간기가 명확한 것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주자본 번각으로, 1239년(고려 고종 26)에 주자본을 뒤집어 새겨 간행한 것이다. 한편, 활자본으로 목활자와 금속활자는 그 종류와 수가 매우 다양하다.

변천

목활자에 관한 초기 기록은 북송(北宋) 사람인 심괄(沈括)이 편찬한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나타난다. 필승(畢昇)이 만든 교니활자(膠泥活字)의 설명 가운데, 나무는 나뭇결에 조밀의 차가 있어 물에 젖었을 때 높고 낮음의 차이가 생겨 활자 면이 고르지 않으며, 조판할 때 점착성 물질과 서로 고착되어 떼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나무 활자를 만들어 쓰지 않고 찰흙 활자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목활자의 사용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은 원나라의 왕정(王禎)이 1298년(원 대덕 2) 목활자 30,000여 개를 만들어 자신이 편찬한 『정덕현지(旌德縣志)』를 인쇄하였다는 기록과, 2년 뒤에 지은 『농서(農書)』 권말의 「조활자인서법(造活字印書法)」에 목활자 인쇄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목활자를 사용하여 책을 찍었는지 전하는 기록과 초기의 활자본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1377년(고려 우왕 3) 흥덕사(興德寺)에서 주자(鑄字)로 찍어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에 목활자가 다소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이전에 이미 목활자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목활자로 인출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는 조선 건국과 더불어 공신들에게 내려준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錄券)』이다. 같은 시기에 서적원(書籍院)에서는 백주지사서찬(徐贊)이 목활자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를 찍어내어 반포한다. 이때 찍은 『대명률직해』의 실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중간된 목판본에 있는 김지(金祗)의 지문(識文)을 통해 목활자 인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밖에도 1455년(단종 3)에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의 간행에 사용된 홍무정운자, 세조 때 호불정책과 불서간인 사업의 촉진에 영향을 받아 을유자체를 닮게 만든 을유자체 목활자, 16세기 후반에 갑진자체를 닮게 만든 추향당자(秋香堂字), 1688년(숙종 14)에 호곡(壺谷)남용익(南龍翼)이 엮은 『기아(箕雅)』의 간행에 사용된 후기교서관필서체자, 1792년(정조 16)에 만든 생생자, 1797년(정조 21)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강에 해당하는 대자를 간행하기 위하여 만든 춘추강자, 1805년(순조 5)에 『전주최씨족보』를 간행할 때 사용한 지겟다리획인서체자, 1895년(고종 32)부터 다년간 교과서를 간행하는 데에 사용된 학부인서체자(學部印書體字) 등을 들 수 있다.

현전하는 금속활자본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1377년(고려 우왕 3) 7월 청주 지역 흥덕사에서 금속활자인 주자로 찍어낸 것이 초간본으로, 상하 2권 중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첫 장이 결락된 하권 1책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주자본은 고려시대에 관서가 아닌 지방의 사찰에서 찍은 것으로, 활자의 크기와 글자의 모양이 고르지 않고 부족한 활자는 목활자를 섞어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03년(태종 3)에 처음으로 주자소를 설치하고 수개월에 걸쳐 금속활자를 주조하였는데, 이것을 그해의 간지에 따라 계미자라 불렀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과 비교해 보면, 활자의 주조술은 바탕 글자를 쓰고 새겨서 부어내는 과정과 방법이 대폭 개량되었지만 활자의 크기와 글자 모양이 고르지 않고 또 글자 획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획이 부분적으로 끊긴 것도 있어 인쇄 상태가 깨끗하지 못하다. 또한 조판술은 크게 개량되었으나 네 모퉁이를 고착시킨 틀의 위아래 변에 계선까지 고착시킨 동판을 만들어 크기와 두께가 일정하지 않은 활자를 각 줄에 꽉 들어맞도록 밀착 배열하여 옆줄이 맞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 글자와 아래 글자의 획이 물려 있다.

1420년(세종 2)에는 계미자의 단점을 보완한 경자자가 만들어졌다. 이 경자자의 모양은 계미자보다 훨씬 작으면서도 글자의 획이 짙고 박력이 있으며 예쁘다. 동판과 활자를 평평하고 바르게 만들어 서로 잘 맞도록 개량하여서 활자가 움직이지 않아 인쇄에도 편리하였다. 조선시대에 세 번째로 개량된 활자는 1434년(세종 16)에 주조한 갑인자이다. 이 갑인자는 여섯 차례에 걸쳐서 주조된 것으로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백미로 손꼽히는데, 경자자가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가 어려워 다시 주성한 금속활자이다. 이천(李蕆)의 감독 아래 장영실(蔣英實)과 이순지(李純之) 등이 업무를 관장하여 그해 7월부터 2개월이 걸려서 20여 만의 대자와 소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글자본으로 만들어진 책은 경연에 소장된 『효순사실(孝順事實)』, 『위선음즐(爲善陰騭)』, 『논어(論語)』 등으로, 부족한 글자는 뒤에 세조로 즉위한 진양대군(晉陽大君)이 모사한 글자로 보충하였다. 활자의 모양은 네모가 반듯하고 평평하였으며, 주조 순서에 따라 초주·재주·삼주·사주·오주·육주 등으로 부르거나 주조한 해의 간지를 따라 갑인자·경진자·무오자·무신자·임진자·정유자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 금속활자의 대표적인 종류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을해자·병진자·경오자·병자자·을유자·정축자·무인자 등과, 임진왜란 이후 1677년(숙종 3) 무렵에 사사로이 주조한 한구자, 실록의 간행에도 쓰였던 현종실록자, 최초의 인서체 활자인 운각인서체자, 정조대의 정리자, 순조대의 전사자 등이 있다.

의의

고전적 연구에서 판본학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특히 형태서지학에서 판본학은 도서의 제작 연대와 시기 및 진위를 구분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목판 인쇄를 주로 사용하였던 중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활자 인쇄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활자의 종류도 다양하고 그 수도 매우 많은데,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고전적에 대한 판본 구분은 더욱 전문적인 감식안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아직까지도 그 시기나 생성 연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은 판본이 많기 때문에, 판본 연구의 발전은 역사적 자료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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