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燕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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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그릇 혹은 잔치에 사용하는 그릇.

개설

연기(燕器)는 연회에 사용되는 그릇이다. 각종 제례에 사용되는 제기(祭器)나 각종 의식에 활용되는 의례용 그릇[禮器]과 구분되는 일반 그릇을 의미한다. 보(簠)·궤(簋)·변(籩)·두(豆)와 같은 제기는 일반 그릇과 겉모습을 구분하기 위해 굽을 높이고 외면에 거치문 등으로 장식하거나 별도로 뚜껑을 마련했다. 그러나 일반 반상기인 연기는 그러한 외형적인 차이가 없으므로 제사에 사용되는 것은 제기임을 나타내는 ‘祭’, ‘제긔’ 등의 명문을 따로 표시하였다.

내용 및 특징

연기는 연회에 사용되는 그릇이라는 의미로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아우른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재질의 그릇이 주기(酒器)와 반상기(飯床器)로 사용되었다.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값비싼 그릇부터 놋그릇인 유기(鍮器), 백자와 분청자 같은 자기(磁器), 진흙으로 만든 질그릇[陶器], 나무로 깎고 옻칠을 한 칠기(漆器), 칠기에 붉은색을 칠한 주칠기(朱漆器), 나무로 깎고 기름을 발라 윤을 낸 목기(木器), 버드나무 가지로 짜서 만든 버들고리[柳器] 등 매우 다양한 재질의 그릇이 일상에서 사용되었다. 이러한 그릇들은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그릇과 각종 의례에 사용되는 예기(禮器)를 구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다양한 제사를 모셨다. 조선시대 국가 의례에 속하는 제사는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구분하였다. 종묘제와 사직제는 대사였고, 석전제와 선농제는 중사에 속했으며, 영성제는 소사에 해당했다. 각 제사마다 예법에 맞게 치렀는데, 사용하는 그릇의 종류와 숫자도 정해졌다. 수없이 많은 제사를 모셨으므로 필요한 제기 역시 많았다. 다양한 국가 행사에 사용되는 의식용 그릇 중에 신을 위한 그릇인 제기는 일반 그릇과 달리 특별하게 관리되었다.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 중에는 일반 그릇과 겉모습이 다른 보·궤·변·두 등도 사용되지만 일반 그릇과 모습이 똑같은 잔·발·접시 등도 많이 쓰였다. 그러므로 제사에 사용되는 반상기 모습의 제기는 일상에서 쓰이는 반상기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명문을 표시하였다.

변천

조선시대에는 일반 반상기가 제기로 사용될 경우에는 청화 안료나 철화 안료로 ‘祭’ 자를 표시하여 구분했다. 처음에는 연기로 제작된 그릇이라 할지라도 제사에 활용되는 경우에는 점각(點刻) 기법이나 묵서(墨書) 기법으로 ‘祭’ 자나 한글로 ‘제긔’ 등의 명문을 표시했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 정부는 예법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피폐한 경제 상황으로 인하여 종묘에 특별한 크기에 재질을 갖춘 제기 대신에 일반 백자를 사용하였다(『선조실록』 37년 10월 20일). 호란(胡亂)으로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된 조선 정부는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연기를 제기로 활용했다(『인조실록』 19년 7월 26일).

참고문헌

  • 박정민, 「조선 전기 명문백자 연구」, 명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 박정민, 「漢陽都城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墨書白瓷의 특징과 의미」, 『美術史學硏究』 28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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